서른 부근의 어느 멋진 날
서른 이후 서른넷까지 울게 된 일이 두 번 있었다.
마음에 드는 소개팅 녀가 연락이 되지 않아 내 마음에서 보내는 발신의 신호를 모조리 집어 삼킬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큰 손자로서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들고 당신의 방을 한 바퀴 휘 돌다 Tv옆 젊은 시절 속에서 웃고 있는 사진을 바라봤을 때 눈이 닮을 만큼 서럽도록 울었다.
서른 이후 두 번의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울음을 터트린 이유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전할 곳이 없다는 부재 상태 때문이었다.
호감이 있는 상대는 날 애초부터 만나지 않았다는 듯이 그림자 취급을 하는듯이 느껴졌고 외할머니이ㅡ라고 부르면 더이상 대답하지 않는,
나를 낳아준 엄마의 엄마는 이 세상에 이제 없으므로 다시는 할매 냄새가 가득한 낡은 방에 찾아와 애교를 떨 수 없다는 문에 부딪쳐 그만 울고 만 것이다.
가슴에서 솟구쳐 올라온 나의 욕망을 두손에 쥐고 상대에게 갔으나 아무런 말이 없을 때 우리는 좌절한다.
때로 상처를 배우는 시간은 혼자 남겨진 상태에서 부재중인 상대가 있을 때다.
이제는 마음에 들었던 그 소개녀도.
베풀며 살던 외할머니도 볼 수 없다.
나는 스스로 상처받아 울었지만 그들이 남겨준 것이 있다.
상처를 배워 어디에 쓰겠냐만 끝내 우리는 상처로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을 더 애절히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는지.
쏟아 낸 눈물의 의미는 그래서 그들이 남기고간 선물이라고. 비록 눈에서 멀어지긴 하였으나 가슴 깊이 새겨놓은 또다른 사랑의 가르침이 아니겠냐고.
글 사진 이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