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플 때 꽃집을 가요.꼭.

서른부근의 어느 멋진 날들

by 이용현

선배와 만나 맥주 한 잔을 하고 집에 오는 길 꽃한다발을 샀다.

한낮 봄에 활짝 핀 꽃을 보고 있다 그만 꺾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그러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하기로 한 것이다.


꽃을 파는 할머니는 직업이 되어 그런 것인지, 이게 무슨 꽃이냐 물어볼 때도 돈을 드릴 때도 무표정하고 성의가 없어 들뜬 마음으로 꽃을 사는 나를 잠시 실망시켰다.


구겨진 인상을 펴고 코 끝에 가까이 대 꽃 냄새를 맡았다. 무표정. 무냄새. 입을 다문듯 굳게 닫힌 잎.

순간 내가 무슨 꽃을 산건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향기가 나지 않네요? 라고 지난 제주에서 만난 플로리스트에게 연락해 물어봤더니 2일에서 3일 뒤면 만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서야 향기가 날 거라고.


2일에서 3일을 기다려야 한다니.
되려 실망보다는 향기가 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있어 좋았다.


아직 덜 여문 꽃을 사온 셈인데 꽃만 산 게 아니라 기다림까지 같이 산 것이다.


누군가는 꽃을 스스로 사는 나에게. 선물도 아닌 주지도 않을 꽃을 뭐하러 사냐고, 어차피 시들 꽃을 뭐하러 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시들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시들 일을 생각하기 전 꽃과 함께 있고 싶었고 내 손에 꽃이 쥐어진 느낌을 사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향기를 이따금 맡으면서 좋아질 기분을 상상했을 뿐이다.


꽃을 사는 순간도 좋았는데 만개를 하지 않았다니.
아직 더 좋은 일이 남았다니.

그 기다림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집 안에 꽃을 들고 오니 노란 꽃한다발에
방이 환해졌다.

맘까지 훤해졌다.


시들 일을 생각하면서 망설인다면 그 꽃은 내 꽃이 될 수 없다. 혹여 사랑도. 일도. 그 무엇이든 잘되지 않을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잘 될 일을 떠올리며 사는 연습을 한다면 염려한 것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살면서 용기를 잃을 때, 마음이 이유없이 아파올 때 우리는 약국이 아니라 꽃을 사러가야 한다.


꽃으로 치유받아야 한다.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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