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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Jul 09. 2017

새를 떠나보낸 그 이후

사랑과 이별에 대한 사적인 그리움

1년간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는 그녀가 있었고 그녀가 떠나고 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곁엔 다른 사람이 생겼다.


떠남을 선택하기 전,


오빠는 나를 왜 붙잡지 않느냐고 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너의 길을 응원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네가 보고 싶으니 가지 말라고  하지 못했다.

네 삶을 존중한다는 진지충 같은 말과 함께 네가 택한 인생이니까 떠나서 더 좋은 경험들을 가지고 온다면 좋은 거지. 내가 붙잡아도 넌 떠날 것이 아니겠느냐고, 멋도 없이 사랑 없이 이야기 했다.


이정하 시인이 썼던 시중에 새는 새장에 가둘수록 불행해진다는 맥락과 같은 문장이 있다.


새를 사랑한다는 말은

새장을 마련해

그 새를 붙들어놓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 높이 훨훨 날려보내겠다는 뜻이다.

 

비록 그녀가 새는 아니었지만 연애하는 감정선에서 그녀를 가두어 놓기는 싫었다.
말이라도 붙잡아주기를 기다렸을 것이라는 지인들의 첨언이 있었지만 할 수 없었다. 하지 못했다.


1년이 지나고 한국에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무렵 좋아하는 시인의 신간이 나왔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제목이었다.


제목을 읽고 나자마자 나는 그녀가 새라고 생각했다.

새는 새장에서 날아가야 불행하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날개를 접지 않는 이상 날개를 펼쳐야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새가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언젠가는 떠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새와 닮아 있다.
새를 키우면 언젠가는 보내줘야 한다. 죽을 때까지 붙들 수 없다.


떠나보내는 일이 싫다면 나또한 새가 되어 같이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같이 날지 못하는 무뚝뚝한 새였다.


사람을 떠나보낸 것이 아닌 새를 떠나 보낸 그 이후.

그 새는 얼마 만큼 자라 있을까, 새를 떠나보낸 나는 얼마나 성숙해졌을까.


비가 많이 오는 밤.
어딘가에서 날고 있을 새를 떠올린다.

새의 날개가 다치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작 만남을 끝내 놓고 떠나는 모든 인연에 축복을 빌고 싶다는 이기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심이기도 한 것이다.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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