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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Jul 11. 2017

이별 앞에 망가진 날

사랑과 이별에 대한 사적인 그리움

나는 망가졌었다. 고등학교 시절 사귄 여자친구가  99일 째 되는 날 헤어지자고 통보했다.

사랑에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날을 꼬박 샌 이른 아침 교복을 입고 학교가 아닌 그 친구의 집 근처로 찾아갔다.

결국 만나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펑펑 울었다.

예고 편이 없는 이별이었다.


학생 주임이 나를 찾는다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끝내 갈 곳이 학교뿐이어서 버스에 올라탔는데 한 장에 210원씩 하던 10장의 뭉터기 차표 중 한 장을 떼어 갖고 아홉장을 냈다.

'병신.'!

하차 하고나서 손에 들린 한 장의 차표를 보며 말했던 단어였다.


교실에 도착해 발바닥을 얻어 맞았다.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 와 이새끼가!"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요."

"발바닥 대."


속수무책.


그리고 서른, 새롭게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매우 착했던 그녀에게 나는 악마처럼 헤어짐을 통보하고 버스정류장에서 이별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쁜 놈.


그 곳으로 다시 올 수 없냐 했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다. 못 간다고 했다.


다시 속수무책.

내가 아닌 그녀가 망가지고 있었다.


내 짧은 이별의 장면에서 둘 중 하나는 무너져야만 했다.

하긴, 이별이 사랑스럽다면 이별할 일이 없지.

둘 다 멋질 수는 없다.

한 쪽은 추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가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는 이별 신은 무엇일까를 상상한다. 어떻게 하면 깔끔하고 젠틀한 끝맺음을 할 수 있을까.


어딘가는 비겁하고 야비한, 가슴을 않게 하는 통보의 이별 선고를 떠나 내가 알지 못하는 로맨틱한 이별이 존재한다면 그 방법을 알려줬으면.


만약, 당신이 알고 있다면.

그런 이별을 고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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