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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Oct 15. 2017

르완다를 다녀와 마음을 앓는 중

사람에게 약한 이야기

창문을 열어 놓고 집을 비운지 9일째

돌아온 방 안에는 많은 먼지들이 쌓여 있었다.

사람의 온도가 잠시 멈춰있던 방.

그 방 안에 다시 오니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지만 짐을 풀고 온수를 틀자 포근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그리웠던 라면 하나를 끓인다.

9일 동안 세 번이나 울고 온 탓으로 마음이 꽤 축축해져 있는데 얼굴로 올라오는 라면 국물의 온도가 새삼 따뜻한 위로가 되는 것만 같다.


어머니도 내 목소리가 그리웠는지 한 번 끊은 전화를 다시 또 걸어 거기는 어땠니, 라고 재차 묻는다.


내가 잠시 부재했던 어머니의 전화 속에는 먼 타국으로 날아가 다른 경험을 살고 온 아들의 삶이 궁금했을 것이다.

수시로 주고 받은 안부가 없어 적적했을 것이다.


라면을 끓이며 새까맣게 그을린 사람을 보는 이 방도 내 온도와 손길이 꽤나 그리웠을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는 먼지가 이리 많이 쌓일 일이 없고 이토록 차가울 리가 없는 것이다.


눈 앞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때가 타기 마련이고, 그 대상이 갑자기 부재하는 순간 티가 나기 마련이기에 자리를 비운 존재를 좀처럼 숨길 수 없다.


끝내 사람에게는 온도가 있어 사람과 가까이 하면 마음을 앓게 하고 가까이 한 사물은 닳게 한다.


고작 잠시 뿐이었는데 아프리카 사진 봉사를 하면서 만진 아이들의 손이 어느덧 그립기도 한 걸 보니 마음을 주긴 주었나보다.

좋은 사람들과 잠시 머문 그 허름하고 아늑한 집은 혹여나 처음처럼 싸늘해지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 방씩 찍어 걸어놓고 온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은 새는 빗줄기에 닳고 있지는 않을는지도.


그사이 지구 반대편 내 방에 쌓인 먼지들은 나 하나 없었다는 이유로 나풀거린다.


어디서나 사람이나 사물에게 사람이 없으면 이렇게 외로운 티가 난다.


사람에게 사람이 있다는 건.

사물에게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따뜻한 위로인가.


사람이 살아서 9일 만에 돌아온 방 안이 서서히 훈훈해지는 까닭은 이유가 있으리라.


좀처럼 웃지 않았던 무표정하고 슬픈 아이들이 한모금의 미소를 나에게 보였던 것도 이유가 있으리라.


아, 지금은 마음을 앓는 중.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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