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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Dec 05. 2017

플로리스트가 꿈이었던 그녀에게

다시, 엄마를 사랑할 때



8주 동안 엄마에게 꽂을 보냈다.

자식을 다 기르고 나서 어떤 큰 이벤트도 없는 그녀에게 주고 싶은 작은 선물이었다.


학창시절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는 인형도, 커플링도 마다하지 않고 사준 적이 있지만 정작 나를 낳아준 엄마에게는 반지 하나 해준 적이 없었다. 갱년기를 앓으 가끔은 우울해보이는 그녀를 볼 때마다 불현듯 어딘가 마음이 가시처럼 쿡쿡 찔려오는 것이었다.


독립을 하기 전까지 주말마다 늦잠을 자고 있으면 새벽부터 어딘가를 나섰다가 들어오는 엄마의 손에는 꽃다발이 쥐어져 있었다.


화병에 꽂히는 꽃들은 매번 다양했고, 그러면서도 그녀가 정작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는 묻지 못했다. 낯선여자에게는 자주 묻곤 했던 그 흔한 질문 하나조차 귀찮게 여겼던 것이다.


한 때는 시들어 버릴 거 뭐하러 사냐고 핀잔도 주었지만, 엄마는 아랑곳 않고 꽃을 바꿔가며 집으로 꽃을 들였다. 그녀가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었다는 사실은 오랜 후에 알았다.


유독 꽃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질문을 던져보며 그녀가 단순히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어라기보다는 꽃에는 치유의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그녀는 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고 했고, 죽어서 다시 환생이 가능하다면 꽃으로 태어나고 싶다고도 했다.


꽃에는 힘이 있었다. 그녀가 식탁에 꽂아놓은 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유전자가 흐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서른살 너머 나는 자주 꽃가게 앞에 섰다.


꽃가게 앞에 서는 순간에는 환하게 피어 있는 생물의 에너지가 가득 느껴졌고, 아직 입을 다문 잎들 앞에선 너희도 조금만 있으면 피어나겠구나. 하는 희망이 느껴졌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져 현금이 있으면 고민없이 꽃을 샀다.


꽃을 사는 일은 왠지 희망을 사오는 일 같기도 했다. 한없이 우울한 날 나에게 선물을 주자고 꽃가게서 꽃을 고르고, 그 꽃을 작은 9평짜리 자취방에 들여 놓았을 때 꽃 하나로 기분과 방 안이 환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동안 그녀가 꽃을 사왔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가 자주 꽃을 사왔던 건 '자주' 희망을 보고 싶어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녀에게 꽃선물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무탈하게 건강하게만 자라나는 자식이 부모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모든 마음을 자식에게 죽을 때까지 보낼 수 없으니 마음을 분산할 곳이 필요했고, 그 희망을 길러낼 곳이 꽃시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아는 지인의 배려로 꽃을 심을 밭을 알려주었을 땐 그 곳에 꽃씨를 뿌려 진정 꽃을 키웠다.

자신이 뿌린 꽃이 새삼 환하게 열려 꽃밭이 되었을 땐 철없는 소녀처럼 좋아하며 내가 꽃을 심었다고 자랑까지 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8주간 동안 꽃을 보낼 때마다 그녀는 꽃사진을 찍어 인증샷을 보냈고, 더할나위 없이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녀는 꽃을 받고 어쩔줄 몰라하는 젊은 여자 같기도 했다.


꽃을 사는 사람은 받은 사람의 표정을 생각하고 꽃을 고른다. 이 꽃이 상대에게 어울릴지. 상대가 좋아할지를 깊이 숙고하며 두 손에 꽃을 쥔다.

반대로 꽃을 받는 사람은 나에게 줄 이 꽃을 고르고 사왔을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짐짓 그늘졌거나 어두운 마음을 잠시라도 환하게 지워낸다.


그러니까 꽃을 선물한다는 건 나와 상대방 모두 희망고 싶다는 .


화려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면서도 인생에 수많은 안개들로 좌절하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들어 나는 꽃집엘 가야겠다. 그리고 선물해야겠다. 나와, 플로리스트가 꿈이었던 그녀에게.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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