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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Feb 25. 2020

엄마가 작아졌다

다시, 엄마를 사랑할 때

포옹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유독 엄마에게는 포옹을 자주한다.

최소 1주일에 1번이라고 잡아도 1년이면 52주, 52번을 안는 셈이고 10년이라고 치면 520번을 안게 되는 셈인데 나를 키워낸 엄마라는 사람을 안게 되는 숫자가 1천번도 안된다는 사실은 매우 적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만나 엄마를 뒤에서 안았더니

엄마가 또 작아진 느낌이다.


"엄마는 왜 자꾸 작아져?"


엄마를 뒤에서 자주 안다보면 알게 된다.

나를 무럭 키워낸 사람이 얼마나 작아졌는지.

작은 화분처럼 내 품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내가 무럭 크는 동안, 엄마는 어쩌다 이토록 귀엽도록 작아졌을까.

한때는 나를 안고 키웠을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다.


손도, 발도, 작아진 것 같다.

엄마를 볼 때마다 자주 느낀다.


엄마의 엄마였던,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했던 말씀은 너 엄마한테 잘해라, 였다.


"너의 엄마, 너 키우느라 고생 많이 했으니 엄마한테 잘해라. 그게 할미한테 잘하는 게다."


잘한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돈을 많이 주는 것, 혹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 승진을 통해 사회적 지위에서 성공하는 것? 그럼에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엄마라는 사람이 나이들어도 외롭지 않도록 좋은친구가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젠 서른 넘고, 쉬흔을 훌쩍 뛰어넘은 엄마에게

우린 서로 같이 나이들어 가지 않느냐며. 좋은 친구가 되자고 했다.

 

더 작아지기 전에

후회없도록 엄마의 작아진 몸을 기억하고 싶다.  

훗날 작은 몸마저 안을 수 없는 순간들이 오면 분명

후회하게 될 수 있을 테니까.


엄마를 안는다.

엄마가 또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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