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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Mar 28. 2020

사랑을 줄 수 있으니 아프지 않다

다시, 엄마를 사랑할 때

그 시절을 추억한다.  

나는 세 살 남짓의 아기기 되어 아장아장 걷고 있고

좁은 보폭으로 걷고 있는 내 걸음을 따라 엄마가 따라오고 있다.


엄마는 내가 세발자국쯤 내딛을 때, 겨우 한 걸음만 내딛어도 따라올 수 있는 큰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가장 작은 걸음으로 오직 나의 보폭을 맞춰준다. 자신의 모든 정신과 몸을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나의 숨과, 귀여운 나의 걸음을 바라봐준 엄마있었기에 나는 한 뼘씩, 한 움큼씩 건강하게 자라난 어른이 되었음을 되새긴다.


이제는 내가 훌쩍 커버린 탓인지, 엄마는 쉬흔이 넘은 지금 더 이상 내 걸음을 맞추지도 않고 자신의 걸음을 걸어간다

.

이따금 앞에서 걸어가는 엄마를 바라보면

 '엄마는 빨래처럼 줄어든 것만 같네...' 고 생각한다.


내 보폭을 근 몇 년 간 맞추며 내 걸음에 박수를 보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 나갈 수 있도록 응원과 격려로 나를 천천히 기다려준 사람.


온전히 나를 위해 걸음까지 맞춰준 사람이 엄마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엄마를 함부로 대하고 무시할 마음이 솟아오를 때마다,먼발치에 서서 내 걸음을 맞춰 따라와주는 그때의 엄마를 떠올린다.


그런 사람이 아직 내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충분한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존재가 곁에 있어 행복하다고, 감사한 일이라고.

제발 건방져지지 말자고, 엄마 앞에선 한없이 작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엄마는 앞으로 더 작아진 사람이 되어 계속해서 줄어들고, 그의 걸음 또한 늘보처럼 점점 느려질 것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처럼 엄마가 천천히 아이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반대로 저만치 가서 엄마의 걸음을 기다리고, 그의 중심을 근 몇 년간 잡아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런 일들은 그가 나에게 줬던 사랑을 마땅히 떠올리며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린 가끔 싸우기도 할 것이고, 이따금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을 줄 수 있으니 아프지 않다.

당연히 내가 받았던 애정을 기억하는 것이니 나쁘지 않다.




부모님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꾸며주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의 여생을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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