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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Sep 13. 2020

아버지 저는 이제 울지 않아요

아버지 저는 이제 울지 않아요.
술을 자주 마셔도 술이 나를 울리지는 않아요.
내 얼굴을 울리는 건 술이 아니라 사람이었지요.

사람으로 인해 괴롭고 외롭고 했던 날들.
어떤 날은 나로 인해 내 스스로를 괴롭히며 자랐습니다만 고통을 경험했던 시절은 큰 고목이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지금 아버지의 주머니엔 얼마가 들어있을까요.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가 잠이 들면 어린 시절의 나는 버릇처럼 아버지의 주머니를 뒤지곤 했는데 늘 주머니가 무거웠던 그 안에서 자주 돈을 꺼내 썼습니다.

아버지는 몰랐던 것일까요, 모른 채 했던 것일까요. 훔쳐진 동전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아버지의 주머니 밖으로 빠져나와 문방구로 흘러갔고 문화초 문방구 아저씨의 주머니에 자연스레 꽂혔습니다.

불량식품을 검게 태워먹으며
이런 게 행복이지 않겠느냐며 히히거리던 그때
9살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버지 덕에 나는 무진장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제 울지 않아요.
우리가 울던 시절은 아버지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한 딱 한 번의 시절이었을 뿐 그 시간은 이제 떠나버리고 없습니다.

아버지도 늙고 이젠 나도 늙고
같은 아저씨가 되어가는 마당에 그 무슨 위로가 필요하겠어요.
각자 배고프지 않게 어디서나 맛있는 거 잘 먹고 어깨 들썩거리면서 우리가 좋아하던 뽕짝이나 들으면서 가끔 취하면 그만. 저는 심수봉, 아버지는 나훈아.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서로 정신없이 살다가 이따금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는 나를 생각하고 하면 그뿐.

아버지 저는 이제 울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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