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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Jun 30. 2021

어느 날 무작정 계획 없이 떠나고 싶다면

삶의 충전이 필요할 때

다양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신세계 빌리브에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에 대한 답을 얻곤 했는데, 우연치 않게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훌쩍 계획 없이 떠난다면 당신은 어디로 떠나겠느냐고.




나는 계획이 없습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유명한 영화 대사와 달리 나는 늘 여행할 때 계획이 없다. 계획이 없어서 다음 일을 예측할 수가 없고, 예측할 수 없어서 많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동안 틈틈이 시간 나는대로 34개국 정도의 세계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여행지를 정하거나, 무작정 떠나는 사유는 정해진 것이 없었다.


어느 프랑스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이 불꽃놀이를 하는 다리가 예뻐서 그곳을 보겠다고 프랑스로 떠났고. 캄캄한 밤 침대에 혼자 누워 있다가 갑자기 오로라가 보고 싶어 핀란드에 가면 오로라가 있다더라, 하기에 찾아간 곳이 북극의 끝. 핀란드였다.


계획 없이 왔으므로 체감온도 마이너스 40도가 되는 곳에서 온몸을 떨며 북극의 날카로운 겨울을 실감했다.


한 번은 독일 여행을 가려다가 비행기를 놓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독일행을 포기하고 당장 떠날 수 있는 곳을 문의한 뒤, 몇 시간 뒤면 바로 떠날 수 있는 싱가포르 티켓이 있다기에 나는 공항에서 갑자기 목적지를 바꿔버린 적도 있다.


그만큼 여행을 떠날 때 무계획으로 떠나다 보니, 손해를 감수하는 일도 많았지만 반대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무계획의 사건들은, 예측할 수 없는 에피소드를 낳고, 내 여행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색다르고 나를 더욱더 즐겁게 하는 여정 또한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쿠스코 공항에서 내다 본 창 밖 풍경, 그리고 여기저기 떠나고 돌아오며 찍은 여권 도장]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버린 코로나는 삶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그간 해외로 다닐 만큼 다녔으니 더 이상 해외에 눈길을 돌리지 않게 되었고, 늘 떠나는 것이 모험이었던 욕망을 뒤로하고 이제는 안전에 대한 욕망에 충실하고자 했다.


책장에 꽂아 있던 책을 하나 둘 다시 읽으면서 늘 흥분으로 점철되었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어느 날을 보냈다.


박경리 시집

한국 문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박경리 작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책은 박경리 선생을 좋아해서라기보다, 그날도 우연히 제목 하나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가 계획에도 없는 시집을 사게 되었다.

냥, 제목이 마.음.에.들.어.서.


여행을 떠날 때, 짐을 싸면서 과감히 버려야 할 것과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맨 처음 여행을 떠나던 시절, 나는 배낭에 이것저것 물건을 넣고 떠나곤 했는데 정작 현지에서는 필요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 이후로 다음 여행은 나의 욕심을, 덜어냄으로써 모든 걸 버리고 떠나거나, 무거운 짐짝을 가져왔구나, 싶다 하면 현지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버리고 왔다. 제목처럼 아주 홀가분하게 말이다.


많은 것들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비워내야 하는 것이 내 어깨와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다음 행선지로의 이동을 좀 더 순조롭게 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날 때는 가방을 앞에 두고, 이것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를 먼저 생각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짐으로 치부하며 최대한 가방을 가볍게 싼다.


내 생활을 영위해나갈 때도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습관은 불필요한 사물을 들이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박경리 기념관을 나와 산소 가는 길의 풍경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흐르다 멈춘 뭉게구름 올려다보는 어느 강가의 갈대밭.”

 

시집을 다시 펼쳐 읽다가 밑줄을 쳐놓은 글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고, 순식간에 나는 박경리 선생의 고향에 대해 검색했다. 그녀는 통영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 통영은 우리가 문학시간에 배웠던 유치환, 김춘수 시인이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했다.


책을 덮은 자정, 나는 통영 시외버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어느 때의 여행처럼 갑자기, 무작정 생각이 나서 발길을 떼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버스에 올라 서울에서 무계획으로 통영으로 떠나고 있었다.

박경리 선생의 시집 하나를 다시 꺼내 읽은 것이 불씨가 되어.


무계획이 가져다주는 것.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사는 사람도 있는 반면 철저하게 무계획으로 그날그날에 충실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침형 인간이 있으면 저녁형 인간이 있는 것처럼 어느 부류의 사람이 더 좋냐는 평가할 수 없다.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것과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지 않을 때의 장단점이 모두 다 있기 마련이니까.


다만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잘 맞는 쪽을 선택해 본인에게 어울리는 여행을 선택하면 된다. 내 여행의 방식은 철저하게 무계획에 가까운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바, 그런 여행이 내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공식처럼 맞아떨어지는 길로 가는 것을 재미없어하고, 지루해하며, 내가 기대한 만큼 모든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여행할 때는 마음을 비운다. 길이 있어서 내가 가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이 또 다른 길이 되는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그러니 언제나 무계획으로 떠나도 크게 기대하는 바가 없기에 실망한 일이 적고, 외롭게 떠나와 있으므로 우연히 만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되며, 줄 하나 없는 허름한 식일지라도 내가 배불리 맛있게 먹고 나온 곳은 곧 나의 맛집이 된다.


동양의 나폴리 ‘통영’

살면서 처음 내딛은 통영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네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산과 바다를 항구 도시. 통영의 절경을 보고 있으니 여전히 떠나오길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통영은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이곳에 오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느 겨울 내가 보았던 노르웨이의 바다보다 이곳 통영의 바다가 훨씬 더 아름다운 것 같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일제 시대, 일본이 왜 그토록 조선을 침략해서 자신의 땅으로 만들고 싶었는지까지도.

[통영수륙해수욕장 위에서 바라본 풍경_ 동양의 나폴리를 연상하게 하는 곳]


동피랑과 서피랑 마을에 오르면 보이는 환하고 푸른 바다. 시원한 바람과 저녁이면 어느 나라 못지않게 화려하게 지는 노을. 이런 도시에서는 예술가가 나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터.

왜 그토록 유명한 문인들이 나오고 걸출한 화가와 음악가들이 배출되었는지도 납득할 만하다.


6.25 전쟁이 일어난 그 시점, 피난을 가지 못하고 남아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예술가가 되었다는 설은 사실인 것이다.


이런 천혜의 자연인 산과 바다를 둘러싸고 자란 사람들은 이따금 아름다움에 도취해 자신의 길을 되돌아보고 사색하는 일이 늘 일상이 되기도 했을 테니까.

[통영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다는 서피랑]


무계획이어도 괜찮아

어느 날 우연히 마음에 이끌려 나간 일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게 했다. 대부분 그러했다. 괜히 떠나왔다는 일보다, 그래도 떠나와서 참 잘했다는 일들이 더 많았다.


계획하지 않았으므로 길을 잃고 만난 길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풍광, 세상에 이런 곳도 있었다니 하면서 느끼는 놀라움과 감탄은 철저한 계획이 아니라 조금은 어긋난 곳에서 있었다.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만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 환경이 허락하는 선에서 어디든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냥 떠나도 좋다고

나와 당신의 무계획을 응원하고 싶다.


박경리기념관 건너편 있는 외길로 들어섰다가 만난 이름모를 곳.20분 정도 걷다보면 저수지와 산림으로 우거진 산책 코스가나온다.


혼자 무작정 떠나온 곳에서 새로운 풍경 하나를 발견하고 그 풍경 하나가 기억 속에 오래 잠길 때쯤이면 나는 아마 또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난 일은 잘한 일이라고, 어느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는 나의 시간을 살았으니. 나쁘지 않잖아?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라는 박경리 시인의 말처럼 모든 것은 짧고 부단히 흘러만 가니까.


어느 날 무작정 계획 없이 떠나고 싶다면 당신에게도 통영을 권하고 싶다.

통영, 그곳에 당신을 반겨주고 아는 이가 하나 없다 해도, 이미 당신을 받아줄 바다가 있다.

[스텐포드 호텔 1층 레스토랑의 view]
[동피랑 언덕의 카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여행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빌리브 홈페이지 (하이퍼링크 삽입 https://bit.ly/3bBia7q)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본 포스팅은 신세계건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신세계빌리브 #VILLIV #신세계건설 #라이프스타일먼트

#빌리브매거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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