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는 이제 울지 않아요.
술은 자주 마셔도 술이 나를 울리지는 않아요.
내 얼굴을 울리는 건 술이 아니라 사람이었지요.
세상과 사람으로 인해 괴롭고 외롭고 했던 날들.
어떤 날은 나로 인해 내 스스로를 괴롭히며 자랐습니다만
고통을 경험했던 시절은 큰 고목이 되었습니다.
지금 아버지의 주머니엔 얼마가 들어있을까요.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 온 아버지가 잠이 들면
어린 시절의 나는 버릇처럼 아버지의 주머니를 뒤지곤 했는데
늘 무거웠던 주머니 안에서 자주 돈을 꺼내썼습니다.
아버지는 몰랐던 것일까요, 모른 채 했던 것일까요.
아니 어쩌면 돈도 쉽게 달라지 못하는 나를 위해 동전을 넣어두셨던 걸까요.
내 손에 훔쳐진 동전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아버지의 주머니 밖으로 빠져나와 문방구로 흘러갔고
문화초 문방구 아저씨의 주머니에 자연스레 꽂혔습니다.
불량식품을 검게 태워먹으며
이런 게 행복이지 않겠느냐며 히히거리던 그때
9살이 느끼던 행복은 지구만큼 컸습니다.
아버지 덕에 나는 무진장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제 울지 않아요.
우리가 울던 시절은
아버지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 딱 한 번의 시절이었을 뿐
그 시간은 이제 떠나버리고 없습니다.
아버지도 늙고 이젠 나도 늙고
같은 아저씨가 되어가는 마당에 그 무슨 위로가 필요하겠어요.
각자 배고프지 않게 어디서나 맛있는 거 잘먹고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를 들으며 가끔 취하면 그만.
서로 정신없이 살다가 이따금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는 나를 생각하고 하면 그 뿐.
아버지 저는 이제 울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