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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Nov 13. 2022

내 아버지를 무슨 권리로 미워했었나

나는 어느 해 아버지를 미워한 일이 있다. 무슨 연유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도 나이를 먹고 나도 같이 나이를 먹다 보니 원망했던 이유가 세월과 함께 희석되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아버지를 미워했던 감정을 지녔었다는 것. 그리하여 미안함을 가지기도 했었다는 것.


아버지를 미워하고 미워하다 그를 미워하지 않게 했던 건 가족 앨범 속에 담긴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나의 어린 시절 곁에 한 남자가 내 옆에 다정하게 있는 사진. 아버지였다. 

몇 장의 사진 속에 아버지와 나는 늘 함께였다. 아버지는 나를 안고 있었고, 무릎에 앉혀 놓았고, 옆에 손을 잡고 세워두기도 하였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작디작은 나를 아껴주었던 사람이 저 남자였던 말인가. 아버지를 원망했던 마음은 이내 중화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이 다 아버지의 탓이라고 책임을 돌리면서 그를 벼랑 끝으로 몰기도 했던 터. 어느날 아버지가 내 앞에서 미.안.하.다.를 말하고 나에게 죄책감을 드러냈을 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방으로 돌아가 이불속에서 혼자 울어버렸다.


그에게 이 말을 듣기 위해서 나는 그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것인가.


누구보다 자식과 가정을 지키며 살아내고자 했던, 함께 잘해보고자 했던 일이 어긋나고 삐그덕 거릴 때 그는 외톨이였고, 혼자였다. 그가 혼자 산으로 가서 오늘은 산에 왔다.라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내올 때도 나는 역시나 울어버렸다.  


무엇 때문에 대체 나는 그토록 아버지를 미워했고 대체 무슨 권한으로 아버지를 제 멋대로 용서하고 재단했단 말인가. 그 일은 지금도 여전히 아니 평생토록 부끄러워할 일이다. 


너 인마, 아버지와 똑 닮았어.라고 하는 말들이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게 될까 봐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와 닮았다는 것이 자랑이 되었다. 스스로의 삶에는 보잘것없다 해도 아내와 나를 지켜주기 위해 애를 쓴 사람. 삶을 내팽개치지 않고 부단히 애써 노력한 사람.


앨범에서 우리 둘의 사진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를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단 한 사람이 나를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을. 

나에겐 그를 미워할 권리가 없었다. 

-

아버지를 닮아가는 게 싫었음에도 이제는 여전히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자상하고, 여리고, 착하고, 다정한 당신. 당신.

유독 아버지와 자식들의 사진을 많이 찍게 된 건 무의식 속에 담긴 나의 인지. 아버지가 내가 보낸 좋은 시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디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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