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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Jul 11. 2023

타인의 친절

한번은 대만을 찾았다가 첫 숙소로 가는 길을 잃어 지나가는 한 모녀에게 길을 물은 적 있다. 핸드폰 전원이 꺼진 상태로 나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대문과 위치를 설명하고는 근처에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두 손에 들려 있던 장바구니를 한 쪽에 내려놓더니 내가 찾는 숙소를 찾아주기 위해 여기 저기 전화도 하고 다른 행인에게 길을 물으면서 골목 곳곳을 분주히 누비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골목을 숨가쁘게 헤매고 난 뒤, 내 숙소는 다른 골목에 있다는 걸 찾아냈고 그들은 내 숙소 앞까지 동행해 나를 데려다 주었다.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꺼내 쓴 시간만해도 족히 30분이 넘었다. 모녀의 이마엔 땀이 송글 송글 맺혀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히 과도하다고 느낄 만큼 나는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쇼핑몰에서 사온 선물 따위를 모두 꺼내 주고자 했으나 결국 거절하며 돌아섰다. 

타국에서 타인의 친절을 받고 나니 어딘가 뭉클했다. 


나를 위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받고 나면 그 마음을 어떻게든 돌려주고 싶어 진다. 받음 마음을 고이 간직했다가 받은 만큼의 이상으로 주고 싶다. 보답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라도 그 친절을 대신 베풀고 싶다. 그러니까 사람에게서 받은 마음은 죽지 않고 어디론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마니또와 같은 것이다. 



그 후에도 타국에서 타인들의 친절을 여러 번 받았다.

내가 받은 친절을 그들에게 모두 돌려주지는 못했으나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넘치는 친절을 베푼다.  


타인에게 받은 친절과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내 얼굴에 쌓인다. 얼굴에 쌓여 있는 내 표정은 과거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친절의 증표와 같은 것이다. 앞으로도 내 얼굴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타인에게 받은 친절과 사랑이 내 얼굴의 모습이라면 나에게 친절을 베풀던 사람들의 표정이 여럿 섞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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