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부근의 어느 멋진 날들
제주도가 생각났다. 이번 봄이 지고 난 뒤 나는 나에게 무엇을 남겨 놓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도 꽂처럼 아름답게 피었다가 진 봄.
나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이전에 사랑했던 그가 내 곁을 떠나기 전, 차마 그를 큰 마음으로 그리워하지 않았다. 적어도 곁에 있을 땐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리움의 크기 만큼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항상 모든 것이 아쉽게 끝나고 나면 뒤돌아서 후회했다.
봄이 다 지고 나서 꽃구경을 하지 못했다고 후회했고
시간이 다 흐르고 나서 공부를 더 해야 했다고 후회했고
사람이 다 떠나고 나서 그에게 조금 더 잘해야 했다고 후회했다.
후회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미련스럽도록 뒤에서 혼자 유난을 떨었다.
모든 것이 떠난 자리에서 혼자 남아 있는 모습은 생각보다 추했다. 분명 그리워할 것임을 짐작하면서도 그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
연분홍 벚꽃이 하늘 하늘 거리에 피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제 곧 너도 지겠구나. 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들은 나 이제 조금 있으면 이곳을 떠나, 그러니 어서 이 봄을 즐기도록 해.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날이 좋아서 마음까지 좋아지는 마당에 꽃까지 아름다운 걸 보고 있으니 이 봄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꽃을 오랫동안 바라보았고, 꽃을 샀고, 엄마를 더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따스한 봄 날 원없이 울었고, 지나간 시절을 철저히 추억했고 떠나간 여자를 그리워 하면서도 예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이 떠나가는 지점에서 나라는 존재마저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을 걸 모든 걸 다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즉흥적으로 지른 비행기표를 가지고 내일 제주도로 떠난다.
머뭇거리기엔 아까운 시절이다.
이 좋은 봄이 다 지고 있다.
부디, 이 좋은 봄이 다 떠나기 전에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며 살기를.
ㅡ
이 봄이 끝나기 전에
그리워하게 될 것들과 더 자주 손잡아야지.
어차피 놓아줘야 할 봄이라면
봄 앞에서 더 크게 더 오래 사랑한다 말할 것이다.
봄이 나를 떠난다 해도.
<울지 마, 당신> 중 에서
#울지마당신#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