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부근의 어느 멋진 날들
아름다운 순간은 저마다 시기가 정해져 있다.
지금 아름다운 모든 것이 평생 아름다울 거라는 건 착각이었다.
카메라를 들고서 할머니에게 가까이 가면 할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쭈굴쭈굴한 얼굴 찍어서 어디다 쓰려고 하냐. 찍자마라. 할미 밉다."
그 사이 셔터를 누르고 렌즈 속에 담긴 할머니를 바라보면 정말 할머니는 아름답지 않았다.
괜히 찍었나 싶을 정도로 초라했다. 그리고 이가 다 나간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아픔이었고 통증이었다.
푸석푸석 늘어진 살, 지도처럼 갈라진 주름들, 굽어진 목과 허리.
할머니의 말씀 그대로 아름답지 않았다.
할머니의 방에서 우연히 본 젊은 시절의 할머니는 진정 아름다웠지만 나이가 든 할머니는 아름답다 말 할 수 없었다.
그저 할머니의 냄새와 노인다운 멋이 있었을 뿐, 화장처럼 화려하고 예쁜 모습은 가고 없었다.
아름답고 예쁜 모습은 이태원에서 스치던 수많은 젊은 여자들에게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뺏는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우리는 언제까지 아름답다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채 영원히 살고 싶지만 우린 새로운 시간에 모든 아름다움을 반납해야만 한다.
그러니 아름다울 수 있을 때 자신을 최대치로 뽐내서 아름다운 모습을 거울 속에 비치는 일은 젊은 시절 우리가 한 번쯤 해볼만 한 일이다.
아름다운 순간은 잠시 머물다 가는 것.
지금 예쁠 수 있을 때 충분히 예쁨을 즐기고 멋있을 수 있을 때 최대치의 멋을 부려보는 일도 나쁘지 않겠다.
가끔은 그런 허세도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일 테니까.
진다. 오늘도 아름답게 살고 또 아름답게 진다.
이형기 -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