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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May 31. 2016

생일날 받는 엽서, 사랑의 남루함...

-은희경의  '빈처',  안도현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생일날, 이런 엽서를 받으면 어떨까요?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오늘은 당신 생일이지만 내 생일도 돼.     

왜냐하면 당신이 오늘 안 태어났으면

나는 태어날 이유가 없잖아.     

                       

                        -은희경, '빈처' 중에서



하나 더.          




네가 보고 싶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결이 쳤다.

........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고,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안도현,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중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하면서 세상을 끝까지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좋을까요?


바람 부는 날도 비 오는 날도 겪는 게 바로 인생의 길인 것을.


오월의 마지막 날,

잠시 행복감도 느끼시라고 아이스크림 같은 글을 보냅니다.

              





추신:


가난한 아내라는 뜻의 '빈처'-

현진건의 소설 '빈처'와 은희경의 '빈처'는 70년의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경제적 무능에 대해 착해빠진 아내는 자기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내는 고독하고 지치고 외롭죠.


은희경은 사랑의 ‘현실적 완성’인 결혼의 고독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을 이루고 나니 당연한 순서처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비탄이라도 있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이렇게 남루한 일상만 남길뿐인가.  


그래서 남편에게 한마디 하죠.

"네가 하는 일은 두 가지뿐이야. 술 먹는 일, 그리고 술 깨는 일."


정말로 어려운 것은 경제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가난해서 아내가 힘든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일상에 빠져버린 남편과 자신을 보며,

'어쩐지 사는 게 다 울적했다.'

'사는 게 다 안쓰럽기만 하다'


이렇게 느낍니다.

 

니체가 말했나요?

"삶을 하찮은 것으로,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깎아내리는 우울을 걷어내고 자기 안에 있는 위대함을 끄집어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일이라는 거죠.


내가 살아가는 그 남루한,  바로 그 비루한 일상을 응시하는 것, 그리고 그 응시를 마음 깊이 끌어안는 것, 거기에  길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보다 위대한 것은 없고,  현재의 내 삶보다 의미 있는 삶은 없으니까요.             




 그림은 고흐, 조각은 로댕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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