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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May 11. 2016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2

아내에 대한 추모 悼亡詩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은 왜 데려가니"

“시간을 병 속에 모아 둘 수 있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당신과 함께 지낼 시간을 영원토록 모아두는 것이에요. 세월을 영원히 알 수 있다면, 한 마디의 말이 사실로 나타난다면 하루하루를 보물과 같이 모아서 당신과 함께 보내겠습니다.”     


미국 가수 짐 크로스의 히트곡 '병 속의 시간'(Time In a Bottle)의 노랫말 일부입니다.      



애처가였던 그는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 이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영원히 아내와 지내고 싶다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지요.   이 노래는 그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뒤 더 유명해져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죽음은 전설을 만듭니다.


시간은 모래시계 속의 모래처럼 흘러내립니다. 사랑은 영원을 꿈꾸지만 결국은 시간의 포로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것도 한 달이나 지나서.      

서울에서 진주까지는 천리길, 거기에서 제주는 또다시 칠 백리길-


추사는 인생의 완숙기인 55세부터 9년간의 제주 유배를 당합니다. 이 고난의 기간에 그는 추사체를 완성시켰습니다.  유배지에서 듣게 된  아내의 죽음은 추사에게 절통함 그 자체였습니다. 한 달이나 지나서 듣게 된 아내의 부음,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볼 수도 없는 자신의 무능과 처지의 한심함을 절통하며 지은 그의 ‘도망시’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승에서 월하노인에게 송사하여

那將月老訟冥司

내세에는 그대와 나 부부의 처지를 바꾸어

來世夫妻易地爲

내가 죽고 그대는 천리 밖에 살아남아

我死君生千里外

이 마음의 슬픔을 그대가 알게 할 수 있을까?

使君知我此心悲      


부부 인연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월하노인(月下老人)은 부부 인연을 맺게 해준다는 전설상의 노인이지요.   그에게 송사를 하고 싶을 정도로 아내가 죽어도 유배지에 묶여 가볼 수도 없는 신세가 된 자신의 절박함을 표현한 완당 김정희의 아내에 대한 추모시입니다.      


 

피카소의 작품



추사가 제주도 유배길에 들른 대흥사에서 원교 이광사가 쓴 현판을 떼어내라고 했다가 해배길에 다시 걸게 해 더 유명해진 사연.  추사보다 한 세대 위의 명필인 이광사도 51세에 유배돼 23년간 유배지를 전전하며 ‘동국진체’를 완성했습니다.      


이광사가 나주괘서 사건으로 투옥되고 집안 어른들이 역모에 연루되고 남편의 처형 결정 소식이 들려오자 더 이상 멸문의 길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아내는 삼남매를 살리기 위해 자진을 합니다. 그러나 이광사는 처형되지 않고 유배형에 처해져 아내만 죽은 겁니다. 그 소식을 유배길에서 한 달 후에나 듣게 됩니다.  그래서 이광사는 피눈물 나는 도망시를 짓게 됩니다. 

       

"... 당신의 한도 정녕 그러하리니

두 한이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인연 있으리.     


창자는 마디마디 끊기는 것 같고

눈물은 강물이 쏟아져 내리는 듯 흐르오.


해도 달도 별도 시들지만

내 가슴에 쌓이는 한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



피카소의 작품



길을 가다 대문에 다섯 살의 김정희가 쓴 ‘입춘대길立春大吉’ 글씨의 비범함을 보고, “글씨를 쓰지 않으면 이 아이의 인생길이 오히려 편하리라.”는 말을 했던 번암 채제공.     


그는 정조 때 영의정으로 조선의 개혁을 위해 온몸을 던졌지만, 그 또한 아내를 먼저 보냈습니다. 아내가 자신을 위해 짓다가 만 흰 모시옷을 보며 죽은 아내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제 이후로 어디 가서 당신 솜씨 얻어 입으리까?

 누가 저 황천에 가서 말 좀 전해주시게. 

 ‘이 모시옷 낭군 몸에 빈틈없이 꼭 맞아요' 라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아내-

아내는 떠났지만, 그녀가 병중에서도 만들다 만 옷이 내 몸에 너무 잘 맞기에 울고, 이 옷을 다시는 지어줄 사람이 없어서 울고, 이 옷을 만들듯이 이제는 내게 마음 써 줄 사람이 없어서 또다시 우는 겁니다.               


조선 인조 때의 우계羽溪 이서우의 도망시도 가슴을 적십니다.           


곱던 모습 희미하게 보일 듯 사라지고,

玉貌依稀看忽無 

깨어보니 등불만이 외롭게 흔들려 그림자 짓네.

覺來燈影十分孤 

가을비가 꿈을 깨우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早知秋雨驚人夢 

창 앞에 벽오동을 심지 않았을 것을.

不向窓前種碧梧.          


그리움은 사람을 꿈속까지 부릅니다. 그리운 마음이 깊다보니  아내의 모습이 꿈속에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왠지 뚜렷하지가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아내의 더 분명한 모습을 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보였다 보이지 않다가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꿈에서 깨니, 외로운 등잔불만 깜박입니다. 그때서야 오동잎에 가을 비가 떨어져 그 소리로 하여 잠이 깬 것을 알게 됩니다. 꿈에서 잠시 보았던 아내의 모습도 없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던들 누가 방문 앞에 잎이 넓은 벽오동을 심을까요?     


영재 이건창은 삶과 시가 한결같았습니다. 유배를 당하고 돌아오니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술잔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살평상엔 먼지만 가득히 쌓였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중문 안으로 들이지만 내 집에 있어도 손님만 같구려….”      


효전 심노숭의 도망시도 가슴을 칩니다. 봄이면 딸과 들에 나가 쑥을 캐서 탕도 끓이고 나물도 무쳐 내던 아내였지요. 아내는 죽으면서 봄에 다시 쑥이 돋는 것을 보면 자신을 생각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듬해 밥상에 쑥이 올라온 것을 보고는 이렇게 썼습니다.      


“… 그때 나를 위하여 쑥 캐주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그 얼굴 위로 흙이 쌓이고 거기서 새 쑥이 돋았구나.“      


그러나 효전은 1년 뒤 도망시의 먹이 마르기도 전에 재혼했습니다.     




현대판 ‘도망시’로는 도종환 시인의 시집, <접시꽃당신>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암 때문에 아내가 4개월 된 딸과 3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뜰 즈음 그는, ‘시집 ‘접시꽃 당신’을 펴내 베스트셀러 시인이 됐습니다.      


죽은 아내를 향한 순정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그도 그 애절함을 끝까지 갖고 가지 못하고 재혼을 합니다.     


그가 6년 뒤에 재혼을 하자 비판이 쏟아졌지요. 죽은 아내 덕분에 시인으로서 이름도 얻고 국회의원까지 되었기에, 그도 마음고생이 많았을 겁니다.  


순정이 적은 시대이기에 사람들은 그만은 순정을 지켜주기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6년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적게 기다린 세월은 아니지요. 가버린 사랑과 다시 온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쓴 두 편의 시를 올립니다. 인생의 예기치 않는 폭풍우를 함께 견디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종환



견우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이 시가 첫아내에 대한 순정이라면, 

새로 온 사랑과 다시 살아야 하는 인생을 말할 수 있는 게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월은 사랑도, 사람도 이렇게 다 데리고 가는 겁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세상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흔들리며, 젖으며 사는 게 삶이고 인생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흔들리기에 그것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의 모습인 모양입니다.

아, 사랑은 이렇게 우리의 인생 전체를 흔드는 모양입니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눈길과 빗길을 걸어가는 게 인간이라는 이름의 숙명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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