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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Oct 13. 2016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외로웠던 게야, 그렇게 해서라도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었던 게야

         

살다 보면, 새삼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많이 노력했지만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노력한 결과가 허망할 때,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게 될 때, 혹은 배신당할 때가 그러하다.      


‘무슨 놈의 인생이 이 모양인가!’     


내가 외로웠을 때, 술 한 잔 사주며

“그런 날도 있는 거야, 이제 곧 풀릴 거야.”


이렇게 편하게 위로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아니 그런 말을 안 해도 말없이 곁만 지켜주어도 된다.     



사람은 외롭다.

세상에 홀로 왔으니 외로운 건 당연하다.       

어쩌면 외로움은 사람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인생길에서 어려운 일은 많다.      

길이 엉켰을 때,

가던 길이 무너졌을 때,

정말 힘들게 노력했어도 잘 안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울컥해져 혼자서 울고 싶다. 인생을 원망하고 싶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 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그런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인생길이 힘들었던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설명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으나 내 인생은 나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삭풍처럼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생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가난과 이별과 거듭되는 실패의 고통 속으로 그토록 토끼몰이 하듯 몰아넣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고통의 도가니에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생각되자 인생에 대해 강한 분노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날 밤 ‘술 한잔’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다.     


시인은 그가 쓴 시처럼 깨끗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성실하게 살면서 노력했지만 가난과 실패와 이별을 겪으며 몇 번이고 용달차를 타고 다니며 먼지 나는 골목길로 이사하는 그 구차한 현이 인생에 대해 문득 비감에 잠기게 했을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인생을 살게 할 힘을 준다. 남자에게는 ‘술 한 잔’이 바로 따뜻한 말이자 위로다.  시인의 말을 들어 보자.           


...‘술 한잔’이란 사랑의 은유적 표현이다.

누군가가 “다음 주에 술 한잔 살게” 하고 말했다면, 그건 그만큼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누가 술 한 잔 사준 적 없다면 그건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는 것은 인생이 결코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는 절망감의 극명한 표현이다. 돌연꽃이란 석련(石蓮)을 말하는데 돌에 새겨진 연꽃이 다시 피었다 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석련이 피었다 져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절망감의 무게가 무겁다는 의미다.      


인생에는 형식도 정답도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고통을 주는가.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한 죄밖에 없다. 그런데 내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절대자를 원망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인생이 나에게 술을 사줘도 한없이 많이 사주었으며 부모자식과 같은 깊은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이 결국 고통의 방법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에 형식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쓴맛을 보지 않고는 결코 단맛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원망할 것이다. ‘내 인생이 왜 이러나. 왜 이렇게 고통이 많고 풀리지 않나’ 하고 연민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하여 급기야 나처럼 인생이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고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생은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는 인생의 마음이 어머니와 같다. 어머니가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인생도 아무런 조건 없이 나에게 ‘술 한잔’을 사준다.

 어떠한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의 술을 사준다. 그래서 요즘은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었다’라고 고쳐 읽는다.

이 시를 노래로 부른 가수 안치환 씨가 “인생이 정말 술 한잔 사주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사줘도 너무 많이 사줬다”고 대답했다.                



정호승 시인은 일상의 쉬운 언어로, 영혼의 우물물을 퍼올려 정화된 시를 쓴다. 시인도 한때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분노하고 원망했을 때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은 오죽하랴. 더구나 요즘처럼 삶이 팍팍하다 보면 인생길에서 이런 저런  먼지가 더  많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외롭다.

어쩌면 외로움은 사람마다 평생 걸려 풀어야 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그 외로움이라는 치명적인 병에 빠지지 않기 위해 위로를 해주기 위해 우리는 친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가끔은 술 한 잔을 사주어야 한다.   

  

“외로웠던 게야. 그렇게라도 해서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었던 게지. 사람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라. 그 사람이 그만큼 외로웠던 증거일 테니까.”    

 

드라마 <대장금>에서 여인들끼리의 질투와 다툼에 대해 노상궁이 궁을 떠나면서 장금이에게 주는 말이다.  


외로운 사람끼리 사는 게 인생이라면,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는 게 인생이라면

가끔은  서로가 술 한 잔 사주며 살아보자.


술 한 잔 사주는 삶이 조금은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나도, 그도 고독한 인생길에서 잠시나마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추신 :


정호승 시인의 자작시 해설은 몇년전 동아일보에 시인이 쓴 글을 줄여서 편집했습니다.


대문과 본문의 사진은 '한국사진의 렘브란트'로 불리는 최민식 선생의 작품으로, 그는 평생 흑백사진을 통해 가난 속에서 나타난 순간의 진실, 인간의 따뜻함, 처절한 숨결을 찾아 사진을 통한 구도의 길을 갔습니다.    




안치환 노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노래 듣기

http://music.naver.com/artist/videoPlayer.nhn?videoId=9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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