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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Jan 08. 2016

바보처럼 산다는 것

총명하게 살기도 힘들지만,  바보처럼 살기는 더 힘들다

우리말에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은 다양합니다.


바보라는 말은 원래 '밥보'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을 ‘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물건을 싸는 보자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보자기로 물건을 싼 뭉치를 '보따리'라고 합니다.


울보는 ‘울음 보따리’, 잠보는 ‘잠 보따리’, 바보는 ‘밥 보따리'인 거죠.


밥만 먹고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을 바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보는 보통 사람보다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정말 바보가 ‘바보’인가요?

바보는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직하고 순수하게'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사람을 바보라고도 합니다.





유치원생이 그린 건가?

이걸 작품이라고 내놨나 하시겠죠?

이 그림은 자기를 스스로 ‘바보’라고 한 사람,

‘바보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이 85세에 그린 자화상입니다.


'바보추기경'으로 천주교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의 존경을 받은 김수환 추기경


 '바보야’라고 자기를 말하는 그 속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국 최초로 추기경 자리에 오른 김수환 추기경의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서,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고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렇게 보면 내가 제일 바보인 거 같아요?”


‘인생이 무엇이고, 길이 무엇인가’를 묻는 우리에게 ‘바보야!!’ 이 한마디를 선물로 주신 겁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또 한 사람의 바보가 있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던 나라죠.

금수저의 특권이나  국회의원과 장관과 재벌의 반칙이 없는 나라, 바로 그런 나라죠.


노무현 전대통령



우리는 두 사람의 ‘바보’를 통해 행복했고, 두 사람의 바보에게 많은 것을 느꼈고 배웠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요?

세상은 시끄럽고 말은 많은 데 정작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세상을 사는 건 어렵습니다.  총명한 사람으로 살기도 어렵지만 바보처럼 살기는 더 어렵죠.


그래서 청나라의 정판교 鄭板橋 라는 사람은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을 했습니다.


세상을 바보(糊塗)처럼 살아가기란 정말 어렵다(難)는 뜻이죠.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잘못 드러내면 뜻이 일찍 꺾이거나 화를 당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안으로 다스리며, 그저 바보인 듯 살면서 자기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정판교는 <바보경>이라는 책을 쓰고, 그 교훈을 전합니다.



총명해 보이기도 어렵지만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어렵다

총명한데 바보처럼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내 고집을 내려놓고 일보 뒤로 물러나면

하는 일마다 편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의도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이 올 것이다.


聰明難 糊塗難  由聰明而轉入  糊塗更難

放一着退一步  當下心安  非圖後來福報也



바보처럼 보이며 살아라- ‘난득호도’는 중국인들의 인생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기를 제대로 알려라',  서양이론은 이런데 왜 동양에서는 자기를 감추라고 할까요?

이것은 문화적 차이입니다.


서양은 드러내는 문화이고, 동양은 감추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함부로 드러내 보이면 상대방이 나를 시기하거나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우나 어리숙한 듯하고, 기교가 뛰어나나 서툰 듯하고, 언변이 뛰어나나 어눌한 듯하고, 강하나 부드러운 듯하고, 곧으나 휘어진 듯하고, 전진하나 후퇴하는 듯 바보처럼 사는 것이 결국은 뜻을 이루게 됩니 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양하게, 아낌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은 인생의 고수(高手)가 아닙니다. 아는 것도 모르는 듯 넘어갈 수 있는 깊은 속내와 지혜는 아는 것을 모조리 드러내 놓는 총명함보다 분명 차원 높은 처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살이의 적은 대개 가장 가까운 데 있습니다.


한비자를 얻으려고 전쟁까지 한 진시황은 동문인 이사의 질투  때문에 한비자를 얻지 못합니다.

병법서를 쓴 손빈은 그의 능력을 시기했던 동문수학한 방연에게 팔다리를 잘리게 됩니다.

무사시는 그 능력을 질투한 가신의 방해로  군주가 원해도 결국 출사를 하지 못합니다.


질투와 시기는 이처럼 자기의 능력을 잘 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일어납니다.


정판교는 바보로 사는 네 가지 장점을 말합니다.


첫째,  자기를 낮추는 것은 자기를 지키는 처세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지기 싫어하고 나서기를 좋아합니다. 총명함과 재주를 드러내면 여우가 꼬리 때문에 죽듯이 공격을 받게 되는 겁니다.


둘째,  물러섰기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총명과 어리석음, 전진과 후퇴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드러내지 않았기에 시기를 받지 않으며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셋째, 총명으로 지적하지 않고 편을 가르지 않기에 화합할 수 있습니다.  남의 사소한 잘못을 따지지 않고 덮어주고 도와주며 화목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입니다.


넷째, 사람을 원만하게 대하는 처세입니다. 원만한 처세는 충돌을 막게 됩니다.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고 남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공통점을 추구하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도량은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원한과 미움을 만들지 않는 거죠. 바로 ‘원세(圓世)’의 처세입니다.


그래서 '바보경'을 인내경이라고도 하는 겁니다. 참는 것을 가르치는 거죠.


인생의 승리자는 누구일까요?


손자(孫子)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중에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바보인 척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상대방을 굴복시킨 자가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긴 자가 승리자입니다.

 

노자(老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툼이 없어야 근심이 없다. 사람을 이롭게 해야 사람을 얻을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해야 사물을 얻을 수 있고,  천하를 이롭게 해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예로부터 사욕에 매달리는 사람이 큰 이익을 얻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천하를 먼저 이롭게 한 자에게 천하는 안기는 법입니다.  어리석게 처세하는 바보는 당장은 뒤진 사람, 낙오자처럼 보여도 세월이 흐른 후에는 결국 승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모두가 꽃이 되고

모두가 별이 되려고만 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너무 각박합니다.


계산하면서 세상을 살지 않는 사람

장군이 되지 않고 스스로 병사가 먼저 되려는 사람

일부러 질 줄도 알면서, 약자를 안아주는 사람-


그런 훌륭한 바보가 그립습니다.


그 바보들이 우리에게

인생을 살만한 것이라 여기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바보 추기경님이 더 생각이 납니다.

법정 스님의 추모시로 편지를 맺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며


                                             

                                      -법정




우리 안의 벽

우리 밖의 벽

그 벽을 그토록

허물고 싶어 하던 당신


다시 태어난다면

추기경이 아닌

평신도가 되고 싶다던 당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땅엔 아직도

싸움과 폭력,

미움이 가득 차 있건만


봄이 오는 이 대지에

속삭이는 당신의 귓속말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추신:


'서로 사랑하십시오'는 선종하시기 전  김수환 추기경님이  남긴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 추모시를 쓰신 법정 스님도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후, 1년 뒤에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 아, 님은 갔지만은 우리는 아직도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가도 그 위대함은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오늘의 편지는

정순훈의  책, <원세방세 圓世方世> 가운데  ‘조화롭게 살 것인가, 소신대로 살 것인가’를 참조로 썼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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