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80이 넘으셨다. 지금은 요양원에 계시다.
아빠랑 사별한 지 어언 30년이다.
그 시간 엄마는 나에게 애증, 그중에서도 증이 컸지만 정 때문에 피 때문에 끊지 못해 연결된 그런 사람이었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남편이지만, 나도 엄마처럼 남편과 일찍 사별하면 어쩌나 은근 걱정했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으로 엄마는 그날부터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셨다. 담배밭에는 따서 말려야 할 사람보다 큰 키의 담배가 가득했고, 아빠 장례를 치르기 무섭게 살림이며 벌이며, 모든 것을 다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큰 아이 출산하고 처음으로 아이를 키우느라 내 코가 석자였다.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상황에 대처하느라 서로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엄마의 걱정을 하나라도 덜어주려, 내가 힘든 것은 하나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날이 갈수록 나에게 서운한 것이 쌓여 날카로운 감정으로 나를 괴롭혔다.
참다못해 엄마에게 서운한 걸 얘기하는 날, 엄마는 나는 아무 부족함이 없는 줄 알았단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하냐는데, 나는 엄마가 힘들까 봐 얘기 안 한 거였는데.... 할 말이 없었다.
애와 증의 반복되는 괴로운 관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엄마는 두 번의 교통사고, 뇌경색, 뇌출혈, 고관절 골절 등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간이 절반은 되었던 거 같다.
많은 부모들이 그러는 것 같다. 누군가 한 명은 미워해야 하는. 자기의 분을 그 사람한테 다 풀어내야 하는.
첫째인 나, 둘째 여동생, 셋째 남동생에게 시기마다 돌아가며 한 명이 엄마 분풀이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몸이 약해지면서,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하면서 엄마도 많이 누그러지셨다.
아직 정신은 온전하고 휠체어 타고 혼자 몸을 가눌 수 있어서 감사하며 잘 지내고 계시다. 병원에 입원한 어느 때보다 지금 가장 평안한 것 같아 감사하고 있다.
아빠를 그릴 때는 애정을 한껏 담아 그렸다. 아빠 사진이 없어 30대 옛날 사진을 보고 그리니 이뻤는데, 80 노인의 얼굴로 엄마를 그리려니 또 그림 보고 "나 안 같다." 하며 삐질 엄마가 떠올라, 붓질이 쉽지 않았다.
엄청 어려운 마음으로 그렸다. "역시나. 엄마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이쁘게 안 나오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다듬고 다듬어 완성하고 보니 평안한 엄마 모습이 나왔다. 웃는 입술이 꼭 엄마 입술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