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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May 03. 2020

이런 순간

순간을 영원한 기억으로 남길 때

그날, 내 눈 앞의 그는 이틀 전 밝은 표정으로 “매형~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라고 외치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인천의 어느 병원 응급실. 의사의 안내로 마주한 그는 마치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편안한 걸까? 언뜻 가슴에 새겨진 불그스레한 자국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분이 묘했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울부짖는 처남댁의 목소리와 어린 조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잠시 밖으로 나와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집중하려 애를 썼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뒷수습을 하느라 동분서주해야 했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났다. 황망하게 너무도 훌쩍. 찰나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깊은 트라우마로, 또 누군가에게는 흘러가는 일상의 에피소드로 남겨졌겠지? 그날 나의 뇌리 속에는 반복적으로 이미 멈춰 선 심장을 압박하던 인공호흡기의 모습과 규칙적인 피스톤 소음, 그리고 호흡기를 제거하자 선명하게 드러난 가슴 위 붉은 자국이 깊이 새겨졌다. 이제까지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인공호흡 장면과는 사뭇 달라 약간 당황스럽던 순간이기도 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무심하게 흐를 뿐이다. 추억의 단편만을 남기고. 그런데 계절의 변화를 재촉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적인 팬더믹 상황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과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거나 고통받고 있고, 속절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보내는 아픔의 순간을 겪고 있다.

 

다행히 우리 대한민국은 5월 2일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한 후 잘 통제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고통받는 국가와 국민들의 아우성은 세계 곳곳을 뒤덮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 수는 현재, 338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미국은 무려 110만 명에 달한다. 전체 치사율은 7.10%에 이르고, 그중 프랑스의 사망률은 18.9%라는 엄청난 수치를 나타내는 상황이다. 또한 벨기에와 영국도 각각 15.8%와 15.5%를 기록하며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213개의 발생국에는 유럽과 중동, 북, 남 아메리카 지역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등 어느 한 지역도 예외가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는 무차별적인 대재앙이다. 아직은 치료 백신 개발 속도도 더딘 상황이다 보니 사태의 심각성은 실로 어마 무시하다.


세계 곳곳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기업들은 자사 제품 대신에 인공호흡기나 방호용품,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다. 매스컴을 통해 보는 여기저기 쌓여있는 시체와 관, 그리고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가 있는 병원이나 임시 시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래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실제로 코로나에 걸렸지만 병원에 들어가는 건 고사하고 확진 검사조차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라 한다. 세계 최고의 부국이라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미국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절친 부부와 어렵사리 통화를 했다.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5일 만에 세상을 떠나시고, 함께 있던 친구 부부 역시 바이러스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한다. 그 와중에 다른 병으로 이미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어머니마저 코로나로 떠나보냈다. 제대로 된 장례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낙담할 틈도 없이 그들 역시 40도가 넘는 고열과 오한, 호흡곤란으로 2주 가까이 사선을 넘나들었다. 너무나 견디기 힘든 순간 병원을 방문했지만 정말 숨을 쉬기 힘이 들 때 오라며 체온계 하나만 달랑 쥐어 돌려 보냈다는 말에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검사 장비와 인력도 태부족이고, 병원은 이미 중환자들로 포화상태다 보니 증상이 분명한데도 확진 검사 한번 받지 못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감춰진 확진자 수가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것일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과연 미국만의 상황일까? 세계 곳곳에서 검사 한번 받아 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스러져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사람들에는 지금 이 순간이 지옥과 다름 아닐 것이다. 이 암울한 상황이 종식되려면 백신이 나오고 모든 사람들이 접종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루빨리 그 순간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그 후, 어렵게 다시 연결된 통화에서 “나 아직 안 죽었어요”란 말로 눈시울을 붉히게 했던 친구 부부는 다행히 죽음의 문턱을 넘어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진실로 감사할 따름이다. ‘언젠가 평화로운 시간이 오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며 함께하는 시간을 갖자’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영원한 기억으로 남긴다.



P.S. 코로나 바이러스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과 절절한 아픔을 겪고 있을 유가족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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