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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Jul 24. 2020

“언제쯤 다시 자전거에 오를 수 있을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당장 내다 버리든지 어디다 팔아버려요”

국토종주를 한답시고 호기롭게 길을 나섰다가 병원신세를 진지가 어느덧 1년 하고도 3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날 춘천으로 향하는 자전거길 위에서 내 노란색 자전거는 나와 함께 언덕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지금은 짐들로 가득 찬 좁디좁은 베란다 한쪽 벽에 비스듬히 걸쳐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새 타이어 바람은 모두 빠지고 먼지만 잔뜩 뒤집어쓴 채로 말이다. ‘미안하다. 쌩쌩하게 도로를 달려야 하는 명마가 변변치 못한 주인을 만나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디가 부서졌다거나 우그러진 부분은 없어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치우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가까스로 무마시키고 집에서 쫒겨날 위기를 넘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 몸은 자전거와 달리 그리 운이 좋질 못했다. 사실 허공을 날아 내 몸이 먼저 바닥에 닿은 후 자전거를 아래에서 받았으니 내 몸이 탈이 나는 게 당연했다. 엑스레이 결과 네 동강이 나버린 쇄골 접합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이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무수한 타박에도 찍소리 못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래, 내가 뭔 말을 할 수 있겠어…… 사고를 낸 내가 죄인이지’. 수술 이후, 팔 힘을 다시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아니, 이건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원상태로의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스쳐 지나가곤 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재활 운동을 할 때나 일상생활 중에도 전기가 통하듯 갑자기 찌릿거리는 어깨 근육 통증으로 화들짝 놀라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불편한 왼쪽 팔을 다독여가며 출퇴근 때마다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고, 쿠션을 받쳐 놓은 상태로 컴퓨터 작업을 했다. 좌우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똑바로 누워 잠을 잘 수밖에 없다 보니 아침마다 등짝 밑 이불보는 땀으로 흥건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도 운동하기를 밥 먹듯 좋아하던 생활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를 날리는데 최고라고 손꼽던 운동이 바로 자전거 타기가 아니던가? 혼자서 무념무상으로 자연 속을 달리던 그 시간은 다른 무엇과도 바꾸고 쉽지 않은 나만의 비상구였다. 그 즐거움을 하루아침에 빼앗겨 버렸으니 그 허전함을 달래기가 쉽지 않았다. 한동안 정말 우울했다. 조금씩 회복기에 들어가면서 아쉬움을 달래 준 것은 수영이었다. 주치의로부터 아픈 어깨를 재활하는데 수영이 괜찮다는 허락을 받자마자 주말이면 무조건 집 근처의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개인적으로 수영도 즐기는 운동 중 하나인 데다가 재활을 겸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재활 핑계도 있겠다 주말마다 수영장에 가면 신나게 레인을 오락가락했다. 금요일 저녁, 퇴근을 수영장으로 바로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불편하던 어깨 기능이 조금씩 예전 성능을 되찾으면서 자유형 외의 다른 영법도 조심스럽게 시도했다. 그러다 마침내 접영에 성공하던 날, 난 혼자 물속에서 감격했다. 근육은 욱신거리고, 어깨는 얼얼하고 아팠지만 그래도 정상 컨디션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영을 끝내고 나면 도서관에 들려 책을 반납하거나 대여하는 것도 주말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루틴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며 한칭 즐기는 중에 이번엔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그 이후야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바이니 설명은 생략하고.


요즘은 뭘 하냐고? 원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좀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비몽사몽 간에도 운동을 한다. 다리 들어 올리기, 복근 운동, 팔 굽혀 펴기…… 회사에서도 틈이 나면 스쾃을 하고, 집에서 가져온 묵직한 바벨도 들어 올린다. 주말이면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러닝 머신 위를 걷고, 기구도 들면서 밀린 땀을 흘린다. 짜릿한 속도감을 즐기며 자연 속을 내달리는 자전거도 아니고, 쉼 없이 팔다리를 내저으며 레인을 왕복하는 수영만큼 화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 대로 견딜만하다. 그래서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내 적응력 지수도 영 모자라는 수치는 아닌가 보다.


이제 지난 15개월간 나와 한 몸이었던 쇳덩이들을 떼어낼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덕분에 올여름 휴가는 병원에서 오롯이 보내야 할 처지다. ‘아직도 묵직한 느낌이 드는 어깨가 이번 수술을 마치고 나면 좀 가볍게 느껴지려나?’, ‘모든 기능이나 힘이 예전처럼 돌아오기는 하는 걸까?’, ‘수술하고 나서 재활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걸리려나?’…. 수많은 의문들로 머릿속이 분주하다.


그런데 그들중에는 이런 의문도 들어 있다.

“언제쯤 다시 자전거에 오를 수 있을까?”


앞으로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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