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이 빠르면 몸이 상할 수 있다.’
‘말이 빠르면 뒤에 후회할 일이 생기게 된다.’
‘생각이 빠르면 그릇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의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말이나 행동이 빠른 사람치고 실속이 있는 사람을 본 적이 드물다. ‘낄낄빠빠’ 라는 신조어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닌 것이다. 욱하는 마음에 벌인 행동이 결국은 나 자신에게 이익보다 손해가 될 때가 더 많다. 또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낸 말 한마디가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사람의 판단이란 것이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 예를 들어 개인의 능력, 지식, 인맥, 돈, 건강…… 등등의 총합에서 비롯된다고 믿지만 뜯어놓고 보면 이게 참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정작 우리 스스로는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이런 성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설령 그 이치를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끊임없이 실수를 반복하며 산다. 이게 다 머리와 가슴, 손과 발이 따로 노는 덕분이 아닐까? 인간이 자신의 그릇이나 운명대로 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결정적인 순간 판단미스로 잘못된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10개가 아니라 8개의 오행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래서 인생 팔자소관이란 말이 있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어느 누구도 지 혼자 잘나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누군가의 도움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깨닫지 못하고 섣부른 말과 행동을 일삼는다. 시간이 지나 후회를 한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5G, 6G나 챗GPT를 논하는 초고속, 초연결, 초지능의 시대다. 그러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그 속에서 달리고 있는 우리 개개인 자신이다. 일일이 그 속도를 맞출 수도 없지만, 꼭 맞춰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실기하지 않으려면 조화롭게 행동하면 된다. 초고속의 시대에 고리타분한 중용의 덕을 들먹이는 게 얼마나 시대착오적이냐며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어떤 시대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가’
란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