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가물한 오래 전 기억을 잠시 꺼내 봅니다. 소싯적 뜻하지 않게 미국 대륙횡단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연식이 꽤 오래된 구형 자동차의 뒤에는 트레일러가, 그리고 지붕 위에는 박스형 스토리지가 올려져 있었지요. 물론 그 속과 자동차 트렁크에는 두 사람의 이삿짐이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미국 서부 끝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동부 끝인 뉴욕까지 장장 10일간의 대장정. 지금 생각하면 당시 젊은 혈기니까 저지를 수 있었던 참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여정에서 보았던 수많은 트럭들 얘기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미국에서는 동서남북으로 이어지는 촘촘히 이어진 고속도로에서 장거리 운전을 하는 대형트럭들이 많습니다. 이 트럭들은 엄청난 물동량 수송을 제때에 맞추기 위해 낮밤을 가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원체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차를 이동식 집처럼 사용합니다. 해서 트럭 내에는 각종 생활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고, 특히 외관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경우도 흔하디 흔합니다.
트럭 기사들은 야간 운전시 앞차를 추월하거나 맞은편 차량을 마주쳤을 때 서로 신호를 교환하곤 합니다. 온갖 전구로 멋들어지게 장식한 대형 차량들이 펼치는 한밤의 퍼포먼스는 상당히 화려하고 재미있습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요? 비록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겠지만 동병상련이다 보니 고된 야간운전에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안전 운전을 바라는 배려의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모처럼 자동차로 서해안을 따라 장거리 운전을 했습니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리다 보니 대형 트럭 뒤에 붙어 있는 왕눈이 스티커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졸음 운전을 예방하는 스티커라는 설명처럼 주간에는 후방 차량 운전자의 시선을 유도해서 전방에 집중하게 만들고, 야간에는 전조등 빛을 약 200m 후방까지 반사 시킨다고 합니다.
왕눈이 스티커는 ‘감시의 눈’ 효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감시의 눈’이란 그림 또는 사진으로 표현된 눈이 사람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고 스스로 정직한 행동을 유도한다는 이론입니다. 한국도로공사에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왕눈이 스티커가 운전자의 약 94%가 후미 추돌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으며, 약 75%에 해당하는 운전자가 긍정적인 관심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하네요.
고속도로에서 전체 사망자의 약 40%가 화물차 후면부 추돌로 인한 사망자이며, 특히 이들 중 61%가 야간에 발생했다는 결과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후미 추돌의 원인이 대부분 졸음이나 주시 태만이라면 왕눈이 스티커 부착을 통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이는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동업자 정신으로 헤드라이트나 트럭 몸체에 장식된 라이트 퍼포먼스를 통해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과 일맥 상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업자 정신. 이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내가 조금 더 힘들다면, 나의 동료의 일은 조금 더 쉬워질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면, 그것은 내 동료가 나의 짐까지 무겁게 지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동료애와 동료 의식은 우리의 일터를 조금 더 행복하고 윤기 있게 만들어 주는 핵심 키워드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 서로를 위한 왕눈이 스티커가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