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낙차 속에서 배운 회복의 기술
순간, 세상이 느려졌다.
페달을 힘껏 밟던 다리가 허공을 헛디디고, 몸은 공중에서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회전했다. 눈앞으로 푸른 하늘과 논두렁, 그리고 자전거 프레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추락의 순간
‘내가 지금…… 하늘을 나는 건가?’
짧지만, 기묘하게도 우아한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낭만은 0.5초도 가지 않았다.
“꽝!”
굉음과 함께 나는 폐자재 더미 위로 곤두박질쳤다. 먼지가 일었고, 쇳조각이 튀었고, 내 몸은 한순간에 우스꽝스럽고도 처절한 형태로 내동댕이쳐졌다.
눈을 뜨자 자전거 프레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낯설 만큼 멀게 보였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지만, 왼쪽 어깨 쪽에서 불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왼쪽 팔에는 전혀 힘이 전해지지 않았고, 마치 내 것이 아닌 듯 어색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 이건 단순한 부상이 아니구나. 뭔가 크게 잘못되었나 보다.”
본능이 먼저 알아차렸다.
그날 밤, 응급실 의사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울려 퍼졌다.
“여기 보이시죠? 왼쪽 쇄골 네 군데가 골절됐습니다. 즉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재활, 길고 고통스러운 터널
일상의 작은 루틴들로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자전거 사고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수술 후 왼쪽 어깨에는 금속판이 박혔고, 활동적이던 삶은 정지 버튼이 눌린 듯 멈춰 섰다.
“이제 팔을 들어 보세요.”
간호사의 말에 겨우 10cm 올렸을 뿐인데 눈물이 핑 돌았다. 단순히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다시 무너졌다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다. 몸이 아니라 삶 전체가 부서진 느낌이었다.
출퇴근 운전이나 업무 때도 항시 쿠션을 받쳐야 했고, 잠은 오직 똑바로 누워서만 잘 수 있었다. 아침마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이불보를 걷을 때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눅눅하게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삶은 날씨를 닮았다
정기 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언제나 날씨와 닮아 있다."
쾌청하던 하늘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끼고, 평탄하던 길목에서 천 길 낭떠러지를 만난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도 길은 열린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그러했다. 그리고 나는 그 경험들을 통해 한 가지 신념이 생겼다.
“좋을 때는 나쁠 때를 대비하고, 나쁠 때는 언젠가 다시 좋아질 날을 믿자.”
어떤 상황에서도 길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몸으로 배웠다.
회복탄력성의 정수
자전거? 금지.
달리기? 절대 안 된다.
등산? 꿈도 꾸지 마라.
이제 내게 남은 건 수영뿐이었다. 허우적대듯 팔을 젓는 것조차 고통이었지만, 그마저 포기하면 더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 그 성격 때문에 여기까지 밀려왔지만, 동시에 그 성격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나다움’에 대한 질문
부상은 내게 기묘한 질문을 던졌다.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더 멀리 가는 게 ‘나다움’일까?
아니면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 그 과정을 견디는 것이 ‘나다움’ 일까?
적어도 내가 체험으로 깨우치게 된 ‘나다움’은 타인에게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가장 익숙하고 견딜 수 있는 방식을 지켜가는 태도였다. ‘나다움’이란 강함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다.
나를 다시 세운 건 근육이 아니라 믿음이었고,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반복된 시도였다.
회복을 다시 정의하다
‘강함보다 유연함이 오래간다.’ 단단함이 나를 버티게 했다면, 유연함은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불(火)의 도전이 나를 세웠다면, 물(水)의 유연함이 나를 다시 살렸다. 그리고 흙(土)은 그 두 흐름을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
균형은 결국, 서로 다른 기운이 만날 때 만들어진다. 삶의 진짜 회복력은 지속적인 긴장감 속의 평온함에서 나온다. 좋을 때 자만하지 않고, 나쁠 때 절망하지 않는 태도 — 그것이 진짜 회복탄력성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쇠와 철사로 고정된 어깨는 내 몸에 새겨진 경고장이었다.
“너는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멈추고 돌아보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부상은 내게 겸손을 가르쳤고, 속도를 늦추는 법을 가르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쓰라린 통증 덕분에 나는 다시 ‘나’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몸이 회복된다고 해서 삶이 곧장 제자리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부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물음의 시작이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그려야 할까? 또다시 흔들린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그 질문은 자연스레 나를 인생 설계의 자리로 이끌었다.
이제, 나는 다시 펜을 들고 나만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
당신의 삶에서 몸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그 절망의 시간을 버티게 해 준 힘은 무엇이었나요?
오늘, 다시 자신을 세우기 위한 ‘작은 루틴 하나’를 시작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