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를 외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
최근 회사 동료들과 함께한 뷔페에서의 일이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접시를 가득 채운 직후였다. 스시, 회, 스테이크, 샐러드까지. 바라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나의 성과물'이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품고 고개를 돌린 순간, 나의 시선은 이미 가득 채워진 내 접시가 아닌, 방금 음식이 리필된 코너에 꽂혀 있었다. 가진 것에 대한 만족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로운 것을 좇고 있는 내 탐욕스러운 시선에 나 역시 살짝 당황했다.
그 순간 느낀 것은, 우리 삶의 태도가 이 '뷔페 접시의 아이러니'와 놀랍도록 같다는 점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성과, 건강, 든든한 동료, 안정된 직장은 투명인간 취급한다. 오직 '내가 아직 얻지 못한 승진이나 작은 손해', '남이 가진 더 높은 연봉이나 보너스', 혹은 '더 편안한 자리' 같은 결핍만 극대화되어 보인다.
우리가 끝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더, 더, 더"를 외칠 때, 우리는 이 비극적인 함정에 빠진다. 나는 그것을 '만족의 러닝머신'이라 불러본다.
우리가 열심히 뛰어서(일해서) 100만 원, 1,000만 원, 1억 원을 손에 넣는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우리의 뇌는 곧 그 성취에 익숙해져서 다시 불만족 상태, 즉 '제로'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제자리에서 뛰고 있는데, 러닝머신은 '남들'과 '욕심'이라는 이름으로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결국 지쳐서 넘어지는 순간이 오고 나서야 후회한다. "아, 내가 왜 그때 이 위에서 내려오지 못했을까?"하고.
이 러닝머신은 부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 ‘돈의 심리학’에는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거나 한때 가졌던 이들의 실례가 넘쳐난다. 일반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부를 벌어들인 백만장자들이 이미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더 큰 욕심' 때문에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잃는 비극을 겪는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신이 가진 것, 받은 모든 것을 망각하고, "나는 손해 봤다"는 분노에 사로잡혀 결국 소중한 관계와 기회마저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이 수시로 벌어진다.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이자, 이 시대의 고질병이 아닐까?
결국 우리가 배워야 할 가르침은 단순하다. 바로 '멈출 줄 아는 용기'다.
우리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욕심에 가득 차 있지만, 그렇다고 그 본성에 습관적으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말일 터. 욕망은 통제력을 잃는 순간, 성장의 연료가 아니라 우리를 파괴하는 독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감사는 거창한 덕목이 아니다. 감사는 우리가 '충분함(Enough)'이라는 경계선을 스스로 선언하는 아주 작고 용감한 행위다.
러닝머신에서 러닝을 멈추고 서서, "지금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
뷔페 접시를 내려놓고, "이것만으로도 이미 감사하다"라고 고백하는 것.
이 작은 선언이 우리를 '결핍의 아귀'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다.
큰 성공보다, 오늘 하루 '충분함의 평온함'을 경험하며 살고 싶다. 매일 아침, 내가 가진 충분한 것들을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뇌며 시작하려 한다. 그런 습관이 우리의 러닝머신 속도를 늦추고, 우리의 삶을 평온하고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