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등산은 시작된다
어떻게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갔냐고요? 뭐 간단합니다. 한 발, 한발 걸어서 올라갔지요.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은 이룰 때까지 합니다. 안된다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달리합니다. 방법을 달리 해도 안될 때는 그 원인을 분석합니다. 분석해도 안될 때는 연구합니다. 이쯤 되면 운명이 손을 들어주기 시작합니다.
- 에드먼드 힐러리, 산악인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교내 독후감 쓰기 대회에서 생전 처음으로 상이란 걸 타보았던 것이…… 물론 그 이후론 별 기억이 없다. 그때 독후감으로 쓴 책이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고상돈 대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었다. 1977년 9월 15일. 당시 29세였던 고상돈 대원은 세르파 펨바 노루부와 함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깃발을 꽂았다.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8,848미터의 꼭대기에 우뚝 서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치는 그의 모습이 당시 11살이던 어린 나에게도 꽤나 깊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젠 책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여 묵묵히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갔던 고상돈 대원은 진정한 산악인이었다. 에베레스트 등정 2년 후인 1979년, 그는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에 올랐으나 하산길에 영원히 산과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이는 누구였을까? 바로 에드먼드 힐러리다. 그는 1953년 5월 29일, 전인미답으로 남아 있던 에베레스트를 셀파였던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처음으로 등정한 인물이다. “에베레스트 산을 어떻게 올랐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그의 대답에서 보듯 진실은 어쩌면 실로 단순하고 명쾌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발 한발, 그리고 될 때까지 하는 것’
8차에 걸친 도전 후 영국 등반대가 마침내 정상 도전에 성공한 9번째 등정은 실패를 거듭했던 티베트 쪽이 아니라 네팔 쪽 남등로였다. 애초 어려울 것으로 여겨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길이다. 거듭된 실패에 좌절하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방법을 달리한 것이다. 분석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단번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설령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은 그냥 모래성에 불과하다. ‘뚜벅이처럼 한발 한발, 이룰 때까지…… 될 때까지 시도하기. 그래도 안되면 방법을 바꿔 서 다시 도전하기.’ 실패를 통해 배우고, 좌절을 통해 한 뼘씩 성장해가는 지난한 과정은 정상에 오르고자 한다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의미로 간주할 수 있음이다. 그러니 그 사실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각각의 사람들에게 목표나 비전이 다르듯, 성공의 기준 역시 동일하지 않다. 또한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길도 하나가 아니다. 그러니 굳이 사회나 다른 사람들이 세워 놓은 정형화된 틀에 갇히지 않도록 하자. 자신만의 기준과 길을 아는 것은 우리가 쏟아 붓는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는 영국의 등반가 머머리 (AlbertFrederick Mummery)가 1880년 주창한 등반 정신인 ‘등로주의’와도 일견 맥락을 같이 한다.
등로주의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등산은 시작된다”고 외치던 그가 산을 대하는 자세이다.
머머리는 가이드를 앞세워 가장 쉬운 코스로 정상에 오르던 전통적인 등정주의에 맞서서 어려운 루트를 직접 개척하고 역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등로주의는 일부 등반가들의 반대를 넘어 마침내 등반계의 새로운 사조로 정착되었다. 머머리즘(mummerism)은 현대를 살아가는 적극적인 시대정신과도 잘 어울린다.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 현대사회다. 예전에는 목적지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길의 속도와 효율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목표를 향해 가는 여러 갈래길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성과 경험이 더 큰 장점으로 인정되는 사회다. 또한 단 한 개의 목표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개의 목표와 그 목표로 나아가는 여러 개의 길이 병존하는 사회인 것이다. 개인과 조직, 그리고 사회가 ‘따로 또 같이’의 형태로 다양한 화음을 내며 함께 굴러가는 시대에 지금 우리가 서있다. 이런 시대에는 결과도 결과지만 끊임없이 융합과 분열을 일으키며 혁신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더 중요시된다. 그러한 혁신의 과정은 삶과 자아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무조건적으로 유행을 따라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과 매력을 드러내고 본능적으로 자유로움을 찾는 행위라는 ‘스웨그’. 스웨거의 마음으로 때론 조화롭게, 또 때론 개성 있게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가는 힘찬 하루를 기대해본다.
* 일러스트: 처음가는 길,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