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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Apr 23. 2016

왕도는 없다

첫 번째 듀에슬론 참가기

뭐가 그리 바쁜지…… 요즘은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머릿속 할 일은 줄지어 있는데 좀처럼 진도는 안 나가고,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결과는 미미하고, 설상가상으로 피로는 켜켜이 쌓이는 느낌? 그러다 보니 수시로 스스로를 타박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글쓰기도 그중 하나다. 아침, 저녁으로 짬이 날 때마다 조금이라도 단상을 이어가려 하는데 요즘은 자꾸 주춤대는 상황이다. 내 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방향성에 대한 고민까지 더해진 탓이다.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들자’는 목표로 매주 회사 임직원들에게 ‘두런두런’이란 제목으로 이메일 글을 보내기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이 가까워져 간다. 보잘것없는 글 솜씨 주제에 꽤나 오래 버틴 셈이다. 또 블로그나 브런치 등에도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며 반강제적으로 글쓰기 습관을 들이고자 애썼다. 


그런데 꼬박꼬박 매주 글을 올리던 나의 습관이나 태도가 최근 많이 불성실 해졌다. 나 스스로와의, 혹시 있을지 모를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수시로 널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거르고 나니, 자연스럽게 두 번이 되고, 어느새 세 번이 되면서 이제는 은근히 습관처럼 굳어져 가는가 싶어 아찔하다. 한 마리 토끼도 넘사벽인 주제에 여러 마리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으니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지 않을까? 이래서 첫 시작이 중요한 것이고, 습관과 루틴이 무서운 것인가 보다. 결국 왕도는 없었다. 꾸준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이 이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것은 지난주에 있었던 듀에슬론 경기였다. 


수년전,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 버켓 리스트의 일종인 ‘저지르기 리스트’를 발표할 때, 나의 리스트 항목 중 하나가 철인 3종 경기 도전이었다. 원래는 5월에 열리는 인천 송도 철인대회를 목표로 하였으나, 주최적의 사정으로 대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대신 지난주 일요일에 열린 미추홀 듀에슬론 대회에 참가했다. 듀에슬론은 마라톤 5km, 자전거 40km, 마라톤 10km를 연속해서 하는 경기다. 철인3종과의 차이점은 수영 1.5km 대신 마라톤 5Km가 추가되는 것으로 일종의 철인대회 준비단계로 보면 된다.


“심쿵!” 대회를 한 달여 남겨놓고 종종 나의 뇌리를 스쳤던 단어다. 일을 하다가 아님 잠시 휴식을 하다가도 경기 생각만 하면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사실 이런 느낌은 수영을 시작한 후 새로운 도전을 할 때도 가끔 경험하긴 했다. 처음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도 그랬고, 3Km 핀수영대회에 나갔을 때도 그랬다. 대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벌렁대고 호흡이 빨라지면서 뭔가 툭 떨어지는 듯한 느낌? ……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했고, 아드레날린이 살짝 도는 듯한 묘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듀에슬론 경기는 경험치도 전혀 없고, 지금까지의 도전 수위를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다 보니 막연한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그래서 나도 모르게 긴장을 많이 했나 보다. 심쿵의 강도가 더 길고 강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대회 일주일 전, 회사 워크숍에 가서 풋살 경기를 하다 그만 발목을 살짝 접질리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덕분에 제일 중요한 마지막 일주일 동안은 연습도 못하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참가한 대회. 다행히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심하게 불어 대는 바람에 옷을 겹겹이 껴입고, 꽃샘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고 동료들과 사진도 찍고 드디어 스타트 라인에 섰다. 출발 신호와 함께 일단의 무리 속에서 힘차게 달려 나갔다. 어차피 첫 출전에 정상이 아닌 컨디션인지라 처음부터 완주가 지상과제이자 절대 목표였다. ‘무리하지 않겠지만 끝까지는 가겠다’는 마음뿐이었다. 


5km 달리기는 가볍게 통과, 그런데 걱정했던 자전거에서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맞바람 때문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데다, 30km 정도가 되니 허벅지 쪽에 간헐적인 신호가 왔다. 마침내 어렵사리 40km 라이딩을 마치고, 마지막 10Km 달리기 구간에 들어섰다. 걱정했던 다리에서 그나마 발목은 견딜만한데, 허벅지가 상당히 뻐근했다. 게다가 발바닥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계속해서 찌릿찌릿 신호를 보내온다.


그렇게 시작한 최종 10Km 마라톤. 한 2Km쯤 갔을까? 오른쪽 허벅지 상단부에서 엄청난 긴장감이 느껴진다 싶더니 순식간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뛰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바닥에 퍼졌다. 고통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경련은 계속 일어나고…… 진퇴양난이다. 문득 지난해 경기서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경기를 포기했다는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아~ 이러다 나도 포기하는 거 아냐?’ 연이어 내 맘속에 다른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쪽 팔리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끝은 봐야지~’ 다급한 마음에 양손으로 경련이 온 허벅지 부위를 주무르고 때리기를 반복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일어나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천천히 걷다가 조금 나아졌나 싶어 다시 뜀박질을 하자마자 또다시 찌릿한 통증이 거칠게 밀려왔다. 이번엔 왼쪽까지 함께였다. 


“아~! 정녕 나에게 완주란 불가능한 일인가?” 다시 바닥에 퍼져 앉아 다리를 감싸 안고 있으니 지나가던 한 선수가 소리친다.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먼저 가세요~” 대답은 그리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는데 까지는 해 봐야지. 꽤 오랜 시간 간절한 마음을 담아 두드리고 주무르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힘겨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스피드를 내기 시작했다. 찌릿함이 계속되었지만 다행히 처음 같은 심각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많은 선수들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진 상황. 이제 아직도 남아서 뛰는 선수가 몇 되지 않는 듯하다. 5Km 반환점을 돌고, 마지막 골인 라인까지의 5km 남짓한 길……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꼭두새벽에 소래에서 동료들과 마라톤 연습하던 기억, 양재에서 팔당까지 혼자 달리던 자전거길,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 함께 대회에 참가한 수영장 동료들…… 그리고 묘하게도 책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은 꼭 써야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으련만 설령 그러지 못하고 자기만족에 그친다 하더라도 이 꿈 또한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결국 운동이든 글이든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전제되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기본 중의 기본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던 날이었다.

 

난 그날 단 몇 초 차이로 철인 컷오프 타임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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