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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갑을(甲乙) 나무

상생의 지혜를 주는 나무의 힘

by 달공원

갑(甲)’은 나무다. 나무 중에서도 아주 굵은 대장 나무다.


육십갑자의 천간(天干)에서 ‘갑(甲)’은 제일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든 나서려는 기질을 드러내고 우두머리 역할을 하려 든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기준~!”을 외치거나 “나를 따르라~!”며 앞장서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십중팔구 사주에 갑의 기운이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태생적으로 기운이 드센 고집불통 성격이라 자존심이 강하고 비타협적이다. 좀 삐딱하기라도 하면 성질머리까지 고약하기 그지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갈등과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살게 될 가능성 또한 상대적으로 높다.


‘갑(甲)’은 오행에서는 목(木), 그중에서도 양(陽) 목이다. 甲의 한자 형태에서 보듯 갑은 껍질이 있는 씨눈에서 뿌리를 쭉 내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삼라만상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의 여파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계절. 마치 웅크렸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껍질을 뚫고 팔다리를 쑥 내미는 모습이 바로 갑의 모습이다. 본격적인 생명의 시작, 계절의 변화를 선포하는 것이다.



‘을(乙)’도 나무다. 나무 중에서도 여린 나무다.


껍질을 벗고 세상에 나오긴 했는데 아직 힘이 좀 부족하다 보니 곧게 솟기보다는 꾸불꾸불하게 퍼지는 모습은 하고 있다. 을의 기질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외유내강’이다. 목의 오행 성질을 타고 난지라 자존감이 만만치 않지만 갑처럼 일방 통행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그 태생적 기질이 어딜 가겠는가?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이나 자존심은 어마 무시하다. 때문에 타인에게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고 수틀리면 극단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갑(甲)’을 사람으로 표현하자면 “기센 고집불통 우두머리”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에 비해 ‘을(乙)’은 “친절하고 세심한 자유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싶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 그렇단 소리다.


‘갑(甲)’이 지닌 양목의 에너지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계절까지도 바꿔 버릴 정도의 힘과 기세를 품고 있다. 막히면 돌아서 새로운 길을 찾고, 때론 정면돌파를 하며 부단히 사방팔방으로 그 기세를 뻗어가려 든다. 치솟아 오르려는, 내처 달리려는, 뛰쳐 나가려는 강렬한 의지는 쉽사리 멈출 생각이 없다. 당장이라도 대업을 이루고도 남을 파죽지세다. 주변까지 아우를 줄 아는 갑이 멋진 리더 후보 1순위인 이유다.


그에 비해 '을(乙)'은 막히면 돌아가는 스타일이다. 강한 상대와 무리해서 맞짱을 뜨기보다는 요령껏 방법을 찾는 것도 삶의 지혜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기본적인 에너지와 더불어 차분함과 세심함도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천성적으로 친절하고 잔정이 많아 베풀기를 좋아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을(乙)’이다.


그런데 세상에 잘난 ‘갑(甲)’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다들 나 잘났다고 들이대기 바쁘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서로 물어뜯는 아비규환 같은 상황으로 미쳐 돌아가지 않을까? 또 ‘을(乙)’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개인도, 조직도, 사회도, 국가도……


이처럼 갑도 을도 분명 그 존재 이유가 있다. 갑은 을이 있으므로 해서 빛이 나고, 그건 을도 마찬가지다. 갑과 을이 함께 푸른 숲을 이루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다. 다시말해서 갑과 을은 대립이 아니라 상생하는 관계다.


그런데 최근, 이런 원리를 송두리째 짓밟는 안하무인 같은 갑들의 행태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땅콩 회황 임원, 인분 교수, 백화점 주차장 모녀, 피자, 치킨, 약, 야채 등등 그동안 감춰져 있던 썩은 환부들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마치 봇물 터지듯 드러나고 있다. 그뿐이겠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하청업체, 본사와 대리점, 그리고 군대와 직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갑질 논란들도 끝이 없이 이어진다. 갑을 관계, 갑을 문화 등에서 통칭되는 갑질의 갑은 상대적으로 강하고 높은 위치나 권위주의의 상징이다. 설령 갑이 선의의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을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의도가 이기적, 악의적이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갑이든 을이든 둘 다 나무다. 곧게 하늘로 솟은 나무도 있지만, 옆으로 뻗는 넝쿨 나무도 함께 잘 어울려야 숲이 더 조화롭고 아름다운 법이다. 그 이치를 생각지 못하고 나만 잘났다고 기고만장 하다가는 밑동에 서늘한 도끼 날이 멀지 않을 수도 있음이다. '인간이란 결국 유한한 갑남을녀의 존재'임을 잊지 말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도록 하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갑과 을 모두에게 상생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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