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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Apr 24. 2023

잃고나서야 아는 것



그저 기도 99 - 잃고나서야 아는 것


나이 들어가며 몸의 여기저기가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러다 혹시… 대책없이 죽는 건 아닐까?’ 철렁 지나친 걱정에 무섭기도 하다.


14년이나 아내를 간병하느라 병원 보조침대에서 살면서 온몸이 망가졌다. 내과 안과 한의원 등 병원을 들락거리며 어느때는 수치가 위험한 상태까지 왔다가 간신히 치료나 쉼을 통해 회복하기도하고 어떤 부분은 이전만큼 돌아가지 못한채 그냥 그런대로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몰랐다. 이렇게 망가지고 아프고 불편해지기 전에는 수십년동안이나 건강에 큰 걱정없이 잘 지냈다는 사실을. 잠시 스쳐지나가는 잔병으로 얼마간 고생은 해도 그걸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러고보니 건강만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이별을 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늘 같이 있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통장이 바닥이 나고 수입도 끊어지고나서야 평생 안굶고 헐벗지 않고 살만큼 늘 최소한의 소유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호의가 계속되면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세간에서 비난받고 여론의 몰매를 맞는 걸 보면서도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꼈다. 설마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줄은 몰랐다.


따지고 보면 건강도 재산도 성공도 만남도 모두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이었다면 내가 원치 않는데 사라질리가 없다. 이것 저것 잃고 슬퍼할리도 없다. 내 맘대로 되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 씩씩거리는 거 보면 어딘가 그것들의 주인은 애초 따로 있었나보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이 당연히 내 것이고 내맘대로 되는 것인줄 알았다. 누군가 호의와 선심으로 주어진 고마운 선물 같은 건데 감사는 할 줄 모르고 성질을 냈다. 왜 가져가냐고! 왜 더 안생기냐고! 왜 내맘대로 안풀리느냐고 원망하며 성질을 부렸다.


건강이 나빠지고 재산을 잃고 사람들도 하나 둘 곁을 떠나 줄어들면서 뒤늦게 그동안 잘 지낸걸 알아차렸다. 동시에 그걸 누리면서 감사하지 않았던 것도 알았고 심지어는 따지고 화내며 갑질 비슷하게 반응했던 사실도 미안해졌다.


내 모든 것을 허락한 누군가가 있다면 뒤늦은 나의 이 반응에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처리할까? 호된 몰수 판정을 내릴지, 이제라도 알았으면 남은 거라도 잘 아끼고 고마워하며 살라고 기회를 더 주실까?


아직도 내게는 잃을까 염려되는 것들이 제법 있다. 남들보다 적기는 하지만 당장 쓸 작은 재산도 있고 노심초사 안달하는 자녀 가족도 있고 꺼져가는 모닥불 같은 건강도 있다. 그 근심의 원인이 되는 모든 소유와 허락된 관계들이 뒤집어 말하면 나에게 아직도 주어진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걱정거리가 있는 동안은 감사하는 게 맞는 이 이상한 진실이 어직 낯설다.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너무 긴 세월의 습관때문에 더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남은 세월을 제대로 산다면 어느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 드디어 나는 아무 것도 잃을게 없는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더 나빠질 이유도 상실할 근심도 없다!’ 라고. 한줌의 원망도 없이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죽음이 두려워 지지 않으려면 더 이상은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니라야만 가능한데… 정말 그 순간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애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늘부터는 건강이나 재산의 상실예감, 소중한 이들과 이별불안이 몰려오면 그것들을 주신 고마움을 동시에 품고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쉽지 않아보인다. 분명한 팩트임에도 불구하고…


  2023. 4. 24 맑은고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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