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루어지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by 희망으로 김재식


“여보 나 배...”
“엥? 방금 소변 뺀 지 30분밖에 안되었는데 또? ..."

평균 3시간, 하루 7-8번을 아내 소변을 고무호스로 빼며 산다.
그래서 나는 발목을 잡혀 아무 외부 생활을 할 수 없다.
어느 때는 1시간에 3번을 빼야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그러니 조금만 길게도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이게 사는 건가 싶다.

“에이, 확!... 세상을 부셔버리고 싶다.”

10번을 잘하다가 1번을 못 참겠는 순간이 있다.
세상을 때려 부셔버리고 싶은 분노와 충동이 울컥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가장 힘든 건 아내다.
소변 찰 때마다, 배변 안 나와서 배 아프고 불편해지는 아내다.
내 속상함보다 10배 100배로...
그 마음이 짐작되면 물거품처럼 분노가 사라진다.
비록 그 자리를 서글픔과 고단함이 채울지라도.

수시로 세상이 망하든지 얼른 죽기를 빌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소원 들어주지 않으셨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러니까 이렇게 소원 안 들어주셔서 고맙다는 모순도 생기는 것이다.

소원. 그거 참 애매하다.
다 이루어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
혹은 안 이루어지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하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불행을 자초한 어리석은 형제들의 소원 이야기.
이 이야기로 미루어보면 틀림없이 그렇다.

[어느 마을에 세 아들을 둔 부자가 있었다. 위로 두 아들은 욕심이 많고 무지 게을러서 빈둥거리며 살았다. 가장 막내인 셋째아들에게 늘 일을 시키고 미루고 그랬다. 나이가 많아진 아버지가 곧 세상을 떠나게 생겨서 세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마을을 다스리는 촌장과 이웃들을 증인으로 함께 부른 자리에서 말했다.

“아이들아, 이제 곧 내가 세상을 떠날 것 같구나. 너희들에게 이 아비가 가진 것을 나누어서 물려주고 가야겠다. 원하는 것이나 소원을 말해보도록 해라. 무엇이든지 들어 주마“
욕심이 아주 많은 큰 아들은 아버지가 가진 넓은 땅과 가축을 모두 달라고 했다. 무지 게으른 둘째 아들은 큰 집과 그 집에 쌓인 재물을 모두 달라고 했다.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이 일에 다른 분들이 증인이 될 것이다!”

그러고 나니 셋째 아들에게는 돌아갈 것이 별로 없어보였다. 빤히 보이는 모든 재산을 두 형님들이 싹쓸이로 가져가는 것을 본 셋째아들은 이번에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지, 제게는 형님들을 노예로 주시기를 빕니다.”
늘 괴롭히는 두 아들 때문에 막내의 앞날이 걱정스럽던 아버지는 셋째의 지혜에 감탄했다. 그리고 속으로 ‘아, 이제는 마음을 놓고 세상을 떠날 수 있겠구나!’ 하며 안도했다.
“그렇게 하겠다! 이 일에도 마을 분들이 증인이 될 것이다.” ]

돌아보면 나도 참 자주 소원을 빌었다.
아내가 아프면서 더 많아졌지만 그 전에도 있었고,
나만 아니라 안 아픈 다른 사람들도 많이 빈다.
대개는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빗나가는 경우가 많고
이루어진 경우도 애당초 소원보다 줄거나 조금은 다른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소원보다 더 잘되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드물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알았다.
소원이 비는 것마다 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싶었다.
어쩌면 세상이 이 정도라도 조화를 유지하며 존재하는 것은
숱하게 빌어대는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가능하였을지 모른다.

행여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전부 이루어졌다면?
아마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 빌어서 벌써 망하거나
세상이 괴물들로 찬 지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끝없는 욕심과 서로 충돌하며 빼앗아대는 본성을 예상해보면.

“하나님! 앞으로도 감정 따라 빌어대는 온갖 소원을 흘려 들어주시고
그저 꼭 필요하고 유익한 소원만 살피셔서 이루게 해주세요.
저도 제가 비는 소원에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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