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너에게로 가는...사는 길

by 희망으로 김재식


우리가 많이 알고 좋아하는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
그의 우물에는 미웠다가 가엾다가 그리워지는 사나이가 있다.

산모퉁이 논가 우물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 한 사나이가 있고 그가 미워보이고
돌아서면 가엾고 다시보면 또 밉고
그래도 돌아서 가다보면 그 남자가 그리워진다는 마음.

나도 종종 내 우물을 들여다보다가 그만 빠지고 만다.
젊을 때는 내가 너무 잘나서 뭐든지 다 할거 같고
예쁜 여자와 행복하게 사는 꿈에 설레기도 했다.
자기 모습에 반했다는 나르시스처럼.

하지만 이제 나의 우물은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슬픔과 불면증을 부르는 죽음의 문이 되어 버렸다.
그 우물에는 들여다볼수록 늙어가는 남자와
홀로되어 온갖 병들이 온몸을 갉아먹어가는 내일만 보인다.
외로움과 포기와 무기력함을 생생하게 맞아야하는 현실의 그림들.

사실 사람의 생은 다 그 과정을 지나가는 정상이거늘
늙고 병들고 혼자되어 사라지는 그 마지막은 괴롭다.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 둘 이별하고 기억에 담고 사는 상처와
할수있는 것 하고 싶은 것보다 못하는 것 포기하는 것이 늘어나고
심지어 저만치 가고 싶고 보고 싶은 자리도 가기 힘들어지는
연약해지는 몸을 느끼며 힘겨워하는 자각은 고통스럽기도 하다.

잠못들어 뒤척이다가... 강의에서 예수의 삶을 설명하는 한 말이 들렸다.
‘우리를 위해 생을 다하다가 마침내는 뼈와 살, 피까지 주고 가셨다’
찬송가 한 구절이 가슴속을 떨리게하며 지나간다.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
예수는 그 각오를 지키기 위해 골고다 가는 길에 누군가가 주는
사형수들에게 흔히 배푸는 통증을 마비시키는 약이 섞인 물을 거절했다.
맑은 정신으로 스스로 내어주는 마지막을 선택하면서.

자기의 우물을 들여다보면 십중팔구는 빠져 죽는다.
나이 들고 몸 불편하며 여러 상처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우리의 우물이란 그렇게 쌓인 고통과 연약함을 더해가는 법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부모와 헤어진 기억들, 돌아가며 나빠지는 몸.
가진 것들은 점점 줄어들고 남들에게서도 잊혀져가는 외로움.
자주 밤마다 그런 모습들 때문에 잠을 설치고 미쳐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나를 들여다보면 꼼짝없이 폐물에 짐보따리만 될 내 미래가
누군가에게 주먹만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달라질것 같았다.
나보다 더 힘들고 외로운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한덩어리 먹을거라도 구하고 벌어서 나눠주러 갈 수 있다면
버티고 살 이유가 될거다. 먹고 기운내고 잠자고 건강을 지킬 명분.
그러는 시간은 허무하지 않을 것 같다.
뼈와 살과 피까지 남을 위해 주시며 생을 마치신 예수님을 보니 그렇다.
극한 고통을 마비시킬 약조차 외면하고 물리신 그 깨끗한 용기야 못 따라도.

나에게서 남에게로
내 우물만 들여다보다가 우울증과 병들어 마칠 생명에서
남의 형편을 돌아보며 가진 작은 것 남은 힘으로 함께 나누다 가는 삶.
죽음에 이른다는 병, 우울증에서 건져내시는 본 되신 예수님이
눈물 울컥 뜨겁게 나오도록 고맙다.
그거 알려주시려고 하나뿐인 생명을 던지셨다.

그만 울어야 한다.
무너진 과거, 잃어버린 소유들
약해진 건강, 이별한 사람들
부재중이 되어버린 그 자리 그 시간들이 주는 악몽
자꾸 자기만 들여다보면 죽을 수밖에 없는 답에서 벗어나자.
남은 여력 남은 시간을 가지고 남은 사람들에게로 가야겠다.
아마도 주님이 바라시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동시에 나와 너, 우리를 살리시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이제 자주 훈련을 해야겠다.
내 우물에 온통 감정과 시선을 쳐박고 몰락하는 길을 벗어나
남을 돌아보며 무엇이라도 유익할 남은 생을 살 수 있도록
마음을 바꾸어먹는 마인드컨트롤을 반복해야겠다.
‘너의 우물속에는 너의 웃음과 나의 평안이 보이고
아픈 몸 볼 것 없는 처지지만 두렵지도 창피하지도 않은 감사가 있고
영영 돌아가면서도 기다려주는 분 있어 슬프지 않은 우물이 되었다’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