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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Apr 26. 2020

마라톤과 배려, 그리고 인간성


<마라톤과 배려>

우리가 많이 아는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다. 42.195km를 뛰는 경기.
올림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다.
마라톤이 올림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이 마라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마라톤은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아테네가 이긴 것을 알리기 위해 먼거리를 달린 사람이
승전보를 전하고 숨을 거둔 것을 기념해서 생겼다.
여기까지는 뭐 교과서적인 이야기다.
그러니 많이들 공부하며 배웠고 익숙한 내용이라 시들하다.
그런데 나는 몰랐던 한가지를 알고 정말 오래 놀랐다.
그것은 회의적이고 성악설에 바탕을 둔 인간에 대한 회의를
조금은 다르게 보는 동기가 되었다.
1974년 이란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올림픽과 거의 같은 취지로 작게 아시아지역에서 열리는 경기다.
놀란 것은 이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 종목을 뺀 것이다.
에잉?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을 작은 올림픽에서 뺀다고? 그게 가능해?
그러나 사실이다.
마라톤은 승자의 기념행사다.
아테네가 이긴 상대가 페르시아였다.
이란은 페르시아의 후예들이다.
그러니 승자의 행사를 이란에서 기념한다는 것은 상당히 거북하다.
어느 너그러운 민족인들 자기 조상의 패전을 잔치로 벌려줄수있을까?
그래서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을 제외했고, 모두가 받아들였다.
아마 아시안 지역의 올림픽이나 다름없는 아시안게임에서
유일하게 마라톤이 빠진 기록이 아닐까?
승자의 후예나 패자의 후예나 같은 결정을 동의해준 의미가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일거다.
사람들이 마냥 이기적이고 전투적이지만은 않다는 본성을 본다.
머리에서 나왔건 가슴에서 나왔건, 정치적 결정이든 장사속이든!
세상은 이런 화해와 수용의 마음이 살아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이런 배려는 좀 있으면 좋겠다.
성공한 사람,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패자나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지말고
실수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용서도 해줄 수 있고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그런 너그러움 말이다.
먼지 펄썩이는 마당에서 울고 았는 한 여인을 향해 조용히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너를 단죄하고 돌 던지던 사람들이 어디 갔느냐?”
“다 가고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부디 죄 짖지말고 잘 지내라!”
- 요한복음 8장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사나이를 닮아가는 날까지!
세상에 아름다운 천국이 이루어지기까지 계속 배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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