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미안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해한다고 말하려면 자신이 먼저 혼자된 외로움의 깊은 고통도 안고 만나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렇게 스스로 그 자리 그 시간을 경험하지도 않은 채로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마치 눈을 가리고 사람들 속에 들어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다. 아픔을 모르면서 남의 아픔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나만이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이 우리를 본질적으로 고독하게 창조하시고, 그리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간곡히 호소하시는 것은 그래서 모순이 아니고 처음과 끝, 안과밖의 모든 것을 아시며 계획하는 하나님의 신중한 결정이다. 왜 평생 외로움은 터럭만큼도 모르게 살다 죽도록 만들지 않으셨는지, 왜 각자 자기만이 짊어질 수 있는 시간과 자리를 안겨주셨는지, 왜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서로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태어나서 죽음까지 철저히 혼자인 것과 아무도 각자의 깊은 마지막 자리는 대신해줄 수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최후에는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존재들이라는 쓰라린 고백이 없고는 남을 온전히 품어주는 사랑은 할 수가 없다. 서로가 알지도 못하면서 코끼리 더듬는 논쟁과 같을테니.
아쉽지만...
젊은 날, 철저히 혼자의 몸으로 세상 급류에 멍투성이 되면서 살아본 나는 그 경험을 돌아보면서 정말 싫지만 고백한다. 수시로 몰려오는 원인모를 불안을 인정하고 끝없는 원망과 질문에서 자유를 얻으려고 한다. '왜?' 라는 꼬리표는 평생을 다투어도 정답이 없는 것을 어쩌라고... 대신 아무도 나의 생명을 좌우하지 못하며(결정적인 도움도 줄 수 없음을 포함하여) 나도 마찬가지로 나도 남에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고백만이 나 아닌 다른 힘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에.
그래서 자칫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엇을 해줘야한다는 무리한 목표를 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그 착오로 인하여 당연히 계속되는 실패의 좌절감에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에! 또한 남에게서 완벽한 이해를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착각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 무리한 요구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빋지 않을 것이니!
사랑하려면 동시에 가슴 한편에 홀로 걷는 자신을 안고 가라. 본질적으로 철저히 외롭고 서러운 분리를 감당하면서 살아가야함도 인정하면서! 그리고 다가가라 사랑하는 이를 향해, ‘나와 같은 사람아! 그 깊은 외로움과 무게를 안고 가는 너를 짐작한다!’ 하면서...
우리의 사랑은 –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채우며 도우며 가는 긴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