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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Apr 08. 2023

나는 누구에게 쓸모가 있을까?

그저 기도 83 - 염치2


‘나는 누구에게 쓸모가 있을까…’


가끔 내 힘이 딸리고

내 가족이 꼭 필요한 도움을 내가 줄 수 없을 때

나는 그런 질문의 구덩이에 빠지곤 했습니다

아내가 처음 발병해서 곧 죽을 것 같은데도

나는 아무 도움이 못되며 밤을 꼬박 세울 때 그랬고

또 치료는 못해도 응급처리를 위해서도

엄청난 병원비용이 필요할 때도 그랬습니다

조금 고비를 넘기고 나니 또 눈에 들어오더군요

방치되고 혼자 알아서 살아남으라 냅둔 딸이

비 오는 날, 추운 날 혼자 잠들고 학교 등하교 하는 게

가슴에 찔린 가시같이 나를 아프게 했습니다

그때 또 그런 자멸감이 몰려왔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부모는 못되는구나’


좌절하여 슬프면 부끄러운 감정이 몰려 오고

또 나를 향기로운 꽃이나 쓸모있는 소금이 못되는

싸구려 신앙인이라는 자책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그렇게 몰아 세운

불행한 구체적 상황들이 나를 버티게 했습니다

내가 포기하면 바로 무너지고 생사가 불투명해질

병든 아내와 어린 막내딸이 포기도 못하게 했습니다

나 혼자라면 이런 저런 선택도 가능했을지 모르는데

가족 가장 이런 위치가 나를 살게 만들었습니다

사는 것처럼 폼나게가 아니라

죽지 못해도 살아야 한다는 선택불가의 숙제로…


내가 나를 무시하고 형편없다고 평가를 해도 살았고

남들이 혀를 차며 딱하다고 차라리 빨리 끝나는게

오히려 더 편하겠다고 지레 결론 내릴 때도

살았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았지요

신발끈 허리띠 조이고 화장실에서 웃으며 나왔지요

그 전에야 거울을 보고 눈물지었더라도 싹 씻고…


손으로 다 꼽을 수 없고 이름을 다 기억못할만큼

많은 분들이 돈으로 음식으로 돕고 기도해주고

먼길을 오랫동안 병문안을 와주었습니다

철마다 명절마다 기억해주며 선물과 생활용품도 보내주셨고

코로나때는 초기에 구하기 힘든 마스크를 여기저기서

많이 보내주셔서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중인데도

사용하고 남을만큼 확보가 되었습니다

염치가 없지요. 나는 반대로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갚을 길이 없고 가진 게 없어 말뿐이었는데

그래도 흉보지 않고 나쁘다 실망했다 하지 않았습니다

또 염치가 없는 것은 금방 끝날것 같았던 사생결단 투병이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길어졌습니다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는 응원의 손길 발길이 난처해졌지요

나도 그만두시라 계속해달라 말도 하기 어렵더군요


‘그래서… 또 염치 없어진채로 계속 살아가는 중입니다’


오직 나의 이 난처한 숙제, 심정은 하나님만이 아실겁니다

그래서 염치없지만 나는 오늘도 기대고 모른척 시침떼고

살아갑니다. 염치없는 사람으로 염치를 외면하고…


(2023.4.8  맑은고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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