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랬어요

‘엄마 아빠는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할까?’

by 파랑새

2016년 11월, 내 생일날 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 엄마는 단 하루도 술을 거르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엄마는 술만 마시면 농약을 먹고 죽겠노라며 자식들을 겁먹게 했다. 당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집안 곳곳에서 농약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엄마가 “그라목손을 마시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기라도 하면 나는 울며불며 혼비백산 할아버지 산소를 시작으로 논밭으로 엄마를 찾아다녔다. 어둠이 무서워 더 이상 엄마를 찾아다닐 수 없게 되면 눈이 퉁퉁 부은 채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기도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엄마가 집에 돌아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믿는 신은 항상 내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그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적은 있어도 그를 완전히 떠난 적은 없었던 이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유난히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독수리 5형제’라 이름 붙인 단짝 친구들과 해 질 녘 까지 놀다가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날도 집에 늦게 들어갔다가 술 취한 엄마의 욕설을 들었다.

“이년아!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너 그럴 거면 아예 나가 살아. 왜 들어와?”

“나도 나가고 싶어. 근데 지금은 갈 데가 없어서 못 나가네.”

엄마는 농번기에도 술을 놓지 못했다. 일꾼들을 데리고 논에 나간 아빠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새꺼리를 내오기로 한 엄마가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 술에 취해 혼자 중얼거리며 울고 있는 엄마를 향해 아빠의 손이 날아오자 나는 아빠 팔에 매달려 ‘엄마 때리지 말라’며 꺼억꺼억 울었다. 아빠의 분노가 잦아들지 않자, TV를 보고 있는 오빠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오빠는 무관심했다. ‘그냥 내버려두라’는 오빠가 아빠보다 더 미웠다.


그날 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교회로 갔다. 불 꺼진 예배당에 무릎 꿇고 앉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눈물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살’에 대해 처음 생각했다.


‘엄마 아빠는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할까?’

‘내가 죽으면 엄마 아빠가 고통스러워하겠지?’

‘그냥 죽어볼까?’

복수심에 자살까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나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들의 상처가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됐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들은 우리를 끔찍이 아꼈다.

숙취를 아는 엄마는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 무척이나 속상해한다. 속이 쓰려 먹은 걸 다 게워냈다는 얘기를 듣고는 호들갑스럽게 걱정하는 바람에 아빠에게 한소리 들었다.

“내가 암에 걸렸으니. 너희들은 안 아팠으면 좋겠어.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너희들이 아프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든, 인간관계로 상처를 받은 날이든, 비록 몸이 아플지라도 이제 부모님께 나의 ‘아픔’을 전하지 못하겠다. 얼마나 걱정하실지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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