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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떤날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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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Mar 30. 2016

3개월 휴직계

안면장애

2012년 어느 가을날 아침, 카랑카랑한 그룹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찾았다.


“어떻게 된 거야?”


“예?”


“중국에서 OLED 실물 샘플이 유출되었다고 하는데 진위 파악해서 전무님께 보고할 자료 바로 메일로 바로 보내? 알았어!”


중국 모듈라인 공장에서 개발 OLED 제품이 검사를 하고 폐기가 안되고 유출이 되었다는 보고가 날아왔다.

2011년까지 AI 관련된 업무만 하다 전반적인 공장 관련 시스템까지 총괄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다. 

그룹장님이 또 한소리가 들려왔다.


“폐기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었길래 이렇게 된 거야?”


문제는 어김없이 시스템으로 넘어왔다.

담당자인 내가 문제를 파악도 해야 되고 대책도 제시도 해줘야 되는 상황

하지만 나 혼자 처리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보고서 만들고 집에 돌아가는 늦은 저녁, 혀에 쥐가 난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별일 아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며칠 가지 않아 귀 뒤에 통증이 심해졌고 며칠 가지 않아 병색은 깊어지고 정확히 반쪽 얼굴 

눈, 코, 입, 혀, 안면 근육이 바미 되는 일명 구안괘사, 전문 용어로 벨 마비라는 증상이 순식간에 찾아오게 되었다.


원인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오른쪽 얼굴을 제어하는 7번 뇌신경 손상.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불을 키는 퓨즈가 나간 거다.

이 퓨즈는 교체는 안되고 다시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나는 그렇게 한쪽 얼굴이 무너진 채로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혀가 마비가 된 상태라 식당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질질 흘렸고

어눌해진 말투로 인해 회의 석상에서는 이런저런 눈치와 시선이 나를 힘들게 했다.

더군다나, 눈 이 감기지 않아 테이프로 한쪽 눈을 얼굴에 붙이고 잠을 청해야만 했다.


더 이상 이런 상태에서 회사를 다닐 수가 없었다.

신경이 마비돼서 그런지 회사에서 주는 마약도 다 소용이 없었다.

내가 내릴 수 있는 합리적 결론, 그리고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휴직계를 길게 인정해 줄 수 있는 그런 핑계

그렇게 난 3개월에 휴직계를 얻을 수 있었고 복귀 뒤에는 하위 고과를 받게 되었다.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될 줄을.


복귀 뒤에 회사 내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먹고 상담을 받고 치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우울증을 않게 된 건 한 3년 정도 된 것 같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한 건

결국 상담해주는 사람도 나의 처지를 겪어 보지 않은 자의 립서비스라는 걸 알았기에 더욱 그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난 조금 더 세상과 가까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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