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구의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줄곧 가지고 지내던 낡은 담요를 떠나보내주는 의식을 치뤘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용했던 담요는 일곱살이 된 친구의 아들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고, 세상의 전부였고, 마음이 향하는 온전한 하나였을 것이다. 너무 낡아 실 올이 다 풀리고 아무리 빨아도 그 자태가 예사롭지 않게 너덜거렸을 것이 분명하였지만, 그 담요는 친구의 아들에겐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겠지. 하지만, 아이는 눈물을 머금고 담요를 떠나보냈다.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 다른 무언가를 마음에 담았기에 가능했으리라.
모두들 아이의 담요같은 무언가를 가졌던 기억이 있다. 나의 어릴 적 사진에는 항상 핑크색 곰인형이 있었다. 코는 빨갛고 세 살의 아이가 두 팔 가득 안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그를 떠나보냈던 의식이나 슬픈 기억은 없지만, 기억이 살아있던 저편에 곰인형은 충분히 낡았었고, 솔기가 여기저기 뜯어져 있었다. 하지만, 항상 방 어딘가에서, 또는 나의 주변 어딘가에서 배회하고 있었던 듯도 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곰 인형은 아무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내가 그를 인식하고 다시 기억을 더듬어 떠올리기 전까지 곰인형이 있었는지조차 까마득했던 사실이 놀라웠다. 세 살짜리 꼬마였던 나에게는 세상의 전부였고, 나의 온 마음이 향하는 것이었으리라.
아이들은 그렇게 인형이든, 담요든, 또 다른 무엇이든 온 마음을 향해 사랑을 담는다. 처음에 태어났을 때 엄마에게 향하던 사랑과 정성은 조금씩 다른 사물로 옮겨가게 되고, 그 사물을 통해 애정과 욕구와 본능과 공감과 소유와 애착을 배우고 떠나보낸다. 그리고 성장한다. 성장한 아이는 이제 또 다른 곳으로 마음이 향한다. 친구이거나 형제 자매이거나, 선생님이거나 또는 다시 부모에게로.... 온 마음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또는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그 속에서 관계와 경쟁과 사랑과 애증과 경쟁과 갈등과 미움의 감정들을 배오고 또 성장한다. 학교에 들어가고 관계의 범위가 넓어진 아이는 보다 넓은 관념의 세계로 마음이 향한다. 우정, 사랑, 성과, 우열, 경쟁, 인정, 자존감과 존재감 등..... 무언가로부터 또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또는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그 것을 향해 마음을 쏟는다. 그리고 배운다. 성장한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된 우리는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 무엇에 마음이 향하는가. 어떤 이는 가족이, 어떤 이는 건강이, 어떤 이는 돈과 명예가, 어떤 이는 권력과 욕망이 마음에 가득하리라.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을 통해 자리잡은 그것들은 삶의 목표가 되고 가치관이 되어 나를 지배한다. 마음이 향하는 그것들을 위해 삶을 설계하고 계획하고 도전하고 살아간다. 가족을 위해, 돈과 명예를 위해... 또는 이상적인 가치를 위해.... 하지만, 일곱살 아이의 담요가 그랬듯.... 내 안의 마음이 향하는 그 무엇 또한 유통기한이 있겠지.
어느 순간 내 마음 가득 향하던 그 무엇은 훌훌히 내 가슴을 떠날 것이고, 또 다른 무엇이 찾아와 내 안을 가득 채우리라. 지근 내 안에 가득한 이것이 언제 떠나가고 또 새로운 무엇이 언제 찾아올 것인지 아무도 모르듯이.... 내 마음이 향하는 새로운 것이 무엇이 될지도 알지 못하리라. 그것이 가족이든, 건강이든, 사랑이든, 관계이든... 또는 미움이나 괴로움이 될지라도..... 오롯이 그들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나의 온 정신과 생각이 집중되겠지....
이렇다.... 내가 추구하는 또는 사람들이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삶의 목표와 가치는 변화한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모래가 손가락 사이를 조용히 빠져나가듯이 그렇게 조금씩 사라지고 찾아오고 변화한다. 지금 내 안에 지긋지긋한 무엇이 있더라도... 내 마음이 향하는 것이 근사한 무엇이더라도... 그들은 언제든지 바닷가 셀 수 없는 모래밭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평범한 관념이 된다. 내가 세 살 때 온 마음을 향해 사랑했던 분홍색 곰돌이가 그저 과거의 애착인형으로 인식되듯이.....
내 마음 가득한 외로움과 고통이 나를 힘들고 지치게 하거나 나의 온 마음이 향하는 권력과 명예의 달콤함이 나를 간질인다해도 초등학교 시절 온 마음으로 함께 앉고 싶었던 짝꿍이 나의 평생의 동반자가 아니듯,,, 또 나의 염원과 노력과 운명의 결정체로 믿었던 대학입시마저 인생의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하듯.... 그들 또한 지나가리라.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사랑도, 나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관계도,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건강도..... 언젠가는 홀연히 빛을 잃고 멀어져가리라. 그러니 가만히 조용히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자. 내가 지금 온 마음을 향해 간절히 기다리고 바라고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질없이 믿고 의지하고 노력하고 갈구하고 소원하면서 얻어내리라. 분명히 그러리라. 그리고 점점 빛을 잃어가는 그들을 하염없이 붙잡고 아쉬워하고 슬퍼하리라. 그 때 까지 기다려 나를 감싸주고 위로해야지.... 괜찮아. 너의 곰인형이 떠난거야. 또 다른 마음이 찾아올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