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언어

by 김필필

나와 가까운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것이 피를 나눈 혈족이라면, 나의 아들이라면 얼마나 어려울까.... 다행히 아들을 옆에서 바라보고 관찰해주고 양육에 도움을 주는 조언을 해 주는 분들이 있다. 물론 그들도 직업으로 하는 일이지만, 내가 보지 못하는 아들의 부족한 부분, 특별한 부분 등에 대해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고 나의 양육태도를 다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어제... 아이의 슬픔의 감정 처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슬픔이나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속에 생겨났을 때 보통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적절한 비교대상은 없지만, 상식 선에서 사회화나 교육이 부족한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바로 표출하고자 할 것이다. 그것이 약간의 폭력적인 행동일 수도 있고, 화나 울음 등의 비 언어적인 것일 수도 있겠고, 직접적인 언어로 자신들의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겠지?


내 아이는 달랐다. 아이는 화가 나거나 마음의 분노가 생기면 말로 하지 않고 전혀 다른 행동으로 그것을 대체했다. 말 그대로 대체이다.... 표현이 아닌... 표현을 통해서만 욕구불만이 해소되고 분노가 슬픔이 발산될 수 있을 텐데.... 우리 아들은 전혀 다른 행동을 통해 욕구를 대체했다. 예를 들어 엄마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보통의 여섯 살 아이들 같으면 당장 엄마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거나, 늦게서야 나온 엄마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등으로 자신의 불만과 분노를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조용히 종이접기를 했다. 무려 40분 동안,,,,, 그리고 만난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인 나만이 아이의 약간은 다른 감정을 캐치했지만, 주변의 다른 어른들은 아이의 의젓함이나 종이접기를 잘하는 아이의 섬세함을 칭찬하기만 했다.


아무도 아이의 기다림이나 분노, 짜증과 화남에 주목해주지 않았다. 그냥 불편한 감정을 가진 아이를 달래 보려고만 하는 엄마도 똑같이 아이의 마음을 볼 줄 모르는 어른이었다. 아이는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났을까....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슬픔과 분노와 답답함이 얼마나 컸을까...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분노를 표현하거나 해결하는 방법 대신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감춰버리고 묻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몰랐다. 지금까지.... 그것이 아이의 분노의 표현인지..... 그리고 또 다른 형태로 생활 곳곳에서 나타났을 것이 뻔한 수많은 분노와 슬픔들..... 나는 다 놓쳐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 사실이 너무 슬프고, 엄마로서 미안하다....


슬픔과 분노를 정확히 인지하고 직시하고 표현하고 발산하고 표출해야 건강한 감정이 생기고,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게 될 텐데..... 엄마가 그렇게 못해서 어른인 지금 이렇게 힘든데... 엄마 때문에 아들도 슬픔의 언어에 너무 문외한이 되었다. 나는 슬픔에 대해, 분노에 대해 어떻게 표출해 왔을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방법을 알아야 사랑하는 아이에게 알려주고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분노와 슬픔과 비탄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발산하고 욕구를 해결해왔을까, 그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방법이었을까? 내 아이처럼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묻어버렸을까...


갈 길이 멀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정의 내리고, 표현하는 것들을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그 방법도, 그 기분도 알 길이 없다. 답답하다.


오늘 아침도 아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무룩해있고, 입을 닫았다. 그냥 책을 떠들어 보고만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슬픔과 분노를 그렇게 잡아두고 묻어두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엄마도 아프고 슬프고 화날 때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럴 때 엄마는 이렇게 한다고 보여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의 그것을 나도 알지 못하므로....... 오늘 또 다른 큰 숙제가 생겼다. 장기 프로젝트가 될 이 숙제를 해결하여 아이와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서로의 슬픔의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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