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볼 뿐..... 어쩌고 어쩌고..... 인간의 무의식이란 참 존경스럽다. 어렸을 적 호빵 광고의 씨엠송이었던 것 같은데 문득문득 유행가마냥 입에 머무르는 노랫가락이 낯설지 않다. 아주 가끔 입가에 머무르다 사라지곤 했던 노랫말이 오늘 유난히 거슬린다. 말하지 않아도 알다니... 어떻게.....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통분모의 테두리 안에서 일반적인 사회 가치관이 통용되는 교육과 관계망 속에 공존하는 사회인(?)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일정한 사회, 문화적 시공간을 공유하는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관습법, 사회규범을 비롯하여 동시대인들이 가질 수 있는 도덕적 규범들도 그러하다. 인간의 본능으로 알 수 있는 두려움, 공포, 슬픔과 분노 또는 기쁨과 환희 등도 인간의 고유한 표정과 몸짓과 분위기 등으로 공유가 가능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스스로든 관계와 사회 속에서든 학습에 의한 것이기에 처음부터 인간끼리의 또는 집단과 집단 사이에 말하지 않아도 공유할 수 있는 개념, 가치관이 존재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반적으로 통용 가능한 개념, 가치.... 그래... 사유라고 해 두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생각들은 그 생각을 공유하는 집단의 크기가 작아지고, 생각의 범위가 좁아질수록 그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국가라는 울타리, 사회, 단체, 사적 관계 등으로 좁혀지는 관계 망 속에서 서로 공유가 가능한 생각이란 그물의 구멍의 크기가 작아지듯, 체에 걸러지는 곡물의 알갱이가 작아지듯 작아질 수밖에 없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생각의 가능성 또한 희박해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일대일의 인간관계라면... 그 어마어마한 가치와 생각의 간극을 메꾸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사적인 관계에 들어오는 순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생각과 개념들은 더욱 세밀해지고 은밀해지며 극히 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개념들은 이미 그 모두라는 범위 내에서 이미 클리어 된 미션이므로 제외시키기로 하자. 가족끼리, 또는 친구끼리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은 그들이 함께한 역사적인 순간과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 그들의 집단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 어떤 기억 속 장면의 일부이거나 함께 공유했던 경험의 단편이기에.....
연인 사이를 가정해보자. 그들의 달달하고 달콤한 기간 속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장면과 경험과 사물(?)들은 넘쳐난다. 사랑은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하고 판단을 여유롭게 하며 세상의 아름다움 면을 보게 하는 힘이 있으므로 처음의 그들은 같은 경험 속 아름다운 장면을 함께 떠올리고, 세기의 모든 연인들이 공통으로 겪었을 사랑의 열병의 어느 부분쯤을 같이 나눌 수도 있다.
식당에서 말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좋아하는 메뉴를 미리 시켜놓기도 하고, 서로가 좋아하는 데이트 장소를 말하지 않고도 결정하면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단편적인 것들을 영혼의 공유와 뼛속 깊은 내면의 공통분모쯤으로 착각하는 안타까운 불행의 씨앗을 장착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결정된,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아주는 환상의 짝꿍, 영혼의 단짝, 달콤한 연인으로 결정된 상대는 그 이후 말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로 속에 갇히고 만다. 신의 아들인 테세우스조차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없이는 빠져나오지 못했던 미궁을... 하물며 한낱 인간이 다이달로스의 미궁보다 훨씬 복잡하고 무궁무진한 변덕으로 점철된 생각의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한단 말인가. 처음 말하지 않고 알 수 있었던 점심 메뉴, 선물, 장소, 추억의 물건 따위의 단순하고 심플하며 로맨틱한 단편들은 더 이상 미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상대의 표정을 미루어 짐작하며 어제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고 상대의 스케줄 속 내가 알지 못하는 직장의 분위기와 더불어 날씨와 그에 따른 생체리듬까지 미루어 짐작한 후에 사고의 거름망을 몇 단계 거쳐, 거쳐...... 이미 지쳐 있다면 미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향후 상대가 생각하고 있는 그들의 관계에 대한 기대를 감안하고 과거의 기억 속 민감한 부분들을 건너뛰고 난 후 최대한 상대의 심려를 끼치지 않으면서 귀염과 깜찍 과 애교를 양념으로 이야기를 건네본다. 인간의 본능이란 어머어마한 것인지라, 찰나의 순간에도 이 모든 과정은 본능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거기에 직, 간접적인 매뉴얼이 쌓인 인간이라면 손쉽게 미션 클리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버들 레스... 이븐 도우......
제로섬 게임처럼 상대는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며 그것의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또 다른 미궁으로 퐁당 빠질 것이니............ 아무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그렇다고 단정하고 나름의 기준과 거름망으로 걸러진 조각조각을 얼기설기 꿰어 만든 엉성한 겉옷을 걸쳐 임시방편으로 추위를 막아보지만, 근원적으로 들어가....... 관계의 성장을 원한다면...... 신이 주신 인간의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인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으로 얼기설기 엮어진 구멍을 덧대어야 한다. 말하지 않고는...... 모른다...... 나는 모르겠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 쌓이고 단단해진 관계 속에 있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아둔하고 이해력이 달리는 나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 인간이 구축했을 인생이라는 거대하고 촘촘한 시간과 공간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행위와 노력 없이 단순히 '사랑'이라는 물론 위대하지만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그를 이해한다고 장담하는 것은 치기에 불과하다. 젊은 시절 치기야 귀여운 시행착오쯤으로 너그러이 용서할 수 있지만, 젊음은 깨닫는 순간 날아가고 부끄러움과 낯뜨거움만 남을 것이니...... 나와 상대를 배려하여..... 말을 하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