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연애의 변수들을 공통분모로 묶어 나름 연애코치를 하고자 하면 늘 언제나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그 분류의 기준이 사랑의 외형적인 유형일 경우는 짝사랑, 장거리 연애, 국가와 문화를 초월한 사랑 등이 있을 테고, 절절한 사랑, 애절한 사랑, 평온한 사랑, 불같은 사랑 등으로 형용사의 종류로 사랑을 분류할 수도 있겠다.
사람이 기준이 될 경우에는 바랑둥이, 복종형, 애교형..... 그리고 나쁜 남자 또는 여자...
한국 사회에서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그저 평범한 형용사와 명사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 왠지 나쁜 남자 타이틀이 무지하게 잘 어울리는 DNA를 가진 족속들이 따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학계의 이론이라도 있을 것 같은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을 가진 우리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모두가 한 번은 만나봤다는 존재감 뿜뿜인 범주의 인간들은 과연 다른가? 잘을 모르겠지만, 나는 아닌 것 같다..... 아닌가?
왜 모두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가? 나쁜 남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인가? 그 매력을 탐구해보고자 나의 연애 흑역사 속 나쁜 남자를 소환해 본다. 그는 나쁜 놈이었다. 세련된 매너와 말투로 주위에 많은 여자들과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드라이브를 즐겼지만, 누구 하나에게 사귄다는 확신을 주지 않았었다. 각각의 여성들을 모두 저마다 매력이 있고, 능력 있는 고급 인력이었고 저마다 맡고 있는 역할이 달랐다. 드라이브만 가는 여성, 공식석상에 등장하는 여성, 여행에 동반 가능한 여성, 그리고 미용실을 함께 가는 여성.....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확실함과 주도면밀함에 박수를 보내지만, 그 당시에는 그중의 비중 있는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어있었던가.
나는 음..... 가끔 드라이브를 가고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재빨리 식사를 먹어치우는 여성이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그냥 떨거지였던 걸로...... 그가 다른 여자들과 다른 곳을 다니고 공식석상에 나는 절대 데려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사귀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알고 있었다. 다만.... 그저.... 그가 눈 길 한 번, 손 길 한 번 더 줄 때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다가 자주 연락이 끊기고 행방이 묘연할 때면 나라를 잃은 슬픔을 맛보곤 했다. 그게 무엇이었기에 어린 나이에 그토록 힘들었을 것인가.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급의 단계를 알고 있는 것일까. 여행 동반이나 공식석상의 지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극장에 가지도 못했고, 사람이 많은 곳을 함께 가본 적도 없다. 다만 절실하게 탐이 나는 위치가 있었으니..... 미용실을 함께 가는 여성이 되고 싶었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늘 깔끔하게 머리를 다듬고 온 날은 늘 슬펐다. 나 아닌 다른 언니가 함께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고, 함께 미용실을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떨거지인 나의 애를 태우는 선수급 신공을 보여주곤 했다. 어쩌면 그리 능글맞으면서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사람을 쥐락펴락 했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하는데.. 당장이라도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아인슈타인도 울고 갈 과학자가 되어 타임머신을 손수 발명한 후 사회생활 처음 하는 어린 나에게 돌아가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무튼 아주 소소하고 지지부진한 지위 변경을 겪으면서 1여 년의 시간을 인생 공부하고 별의별 희한한 에피소드를 남기면서 그 나쁜 놈은 내 연애사를 종횡무진했다. 나는 그로 인해 절절한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공포영화의 심리전을 맛보았으며 스릴러 영화 주인공처럼 다른 여성들의 눈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급기야 생각보다 허술했던 그의 아이디를 해킹(?)하여 교회를 함께 다니던 나의 레이다에 전혀 없었던 여성과 채팅을 하기까지 했다니..... 아주 지저분한 에피소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구나....
교회를 함께 다니던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녀 또한 자신의 지위를 인지하고 있었고, 나의 지위를 탐색했다. 그녀는 내가 미용실을 함께 가는 지위를 갖고 싶었던 것처럼 자신만을 위한 달콤한 통화 연결음이 갖고 싶었던 듯하다. 그녀는 간곡하게 내가 나쁜 남자에게 전화 걸 때 어떤 통화연결음이 나오는지 물었다. 그녀의 숨 가쁜 조바심이 대화창으로 느껴지는 순간.. 게임 끝!! 나는 그 순간만을 위한 위너였다.
그래..... 그녀에게 없는 통화연결음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녀보다 높은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고..... 머지.... 이 게임 맵 미션 클리어하는 이 느낌적인 느낌은.... 지금이야 어이없어하면 손가락으로 내뱉는 에피소드지만 그 순간은 절절했고, 위태로웠으며 대단히 미숙했다. 교회를 다니는 그녀와 동지애를 느끼며 나눴던 대화를 끝으로 나는 그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물론 지난한 과정들이 더 있었겠지만, 그와의 연애 아닌 연애 말미에 '나랑 결혼할래?'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힘겹게 지켜왔을 오만가지 정이 한 순간에 뚝!!! 떨어지는 기적을 경험했으니 신은 살아있고 나를 버리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전설이..
사람이 인생에서 돈오의 경지를 경험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 과정과 깨달음으로 나의 연애사에 나쁜 남자의 폴더가 생겼고, 그 안을 가득 채운 갖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기질 또는 성격을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보다 더 나쁜 남자는 만나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수많은 희생양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나쁜 늑대들을 지저분하고 분통 터지는 에피소드 없이 걸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나쁜 남자는 본능적으로 상대의 약점과 간절함을 읽어낼 줄 아는 책사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 재능이라면 재능을 자신을 사랑해주는 상대에게 낭비한다는 게 참 안타까운 일이니, 이들을 전쟁터의 전략가나 스파이 등으로 활용하면 참 좋을 것 같은 개인적인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그들은 상대의 간절함을 이용하여 관계의 우위를 점하고 약점을 움켜쥐어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움직인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나쁜 남자 또는 여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드물게 그들을 극단적으로 나빠지게 하는 케미를 가진 착하디 착한 상대를 만나거나 어리숙한 누군가가 그들의 기질을 둗구게 되면 그들은 나쁜 남자 또는 여자의 폴더에 차곡차곡 쌓일 에피소드를 생산해 내는 연애 범죄자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쁜 남자의 범주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달리 적용될 수 있고, 그 가능성만큼이나 희생자도 특정할 수 없는 것이 이 연애의 가장 안타까운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이 연애가 무서운 것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를 유전자를 타고난 여자들은 불나방처럼 자신이 희생당할 것을 알면서도 달려든다는 것인데 이 또한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훈수로 외면하기엔 너무나도 미묘하고 복잡 다난한 포인트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는 세기의 바람둥이 나쁜 남자가 몇 년 만에 애 둘 들쳐 엎고 세상 가정적인 남자로 변모하여 우연히 지나치기도 하고, 세상 다 줄 것처럼 절절하던 순백의 사랑이 온갖 세상의 풍파에 너덜너덜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고 연애 아니겠는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쁜 남자는 없다. 그들도 남다른 사랑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영혼의 단짝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영혼들 중 하나이고, 그저 극히 드문 확률(이라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쁜 남자와 여자에게 당하고는 있지만,...)로 나쁜 남자가 되기도 하고, 나쁜 여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연애를 글로 배우고 입담으로 겪는 것보다는 나쁜 남자든 착한 녀석이 든, 순둥순둥 한 연하남이든 고혹적인 섹시남이든 우선 만나 나만의 폴더를 채우기를 추천한다. 나에게 나쁜 남자가 너에게 순정남일 수도 있고, 연애 트라우마를 제조기였던 사람이 운명의 짝이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할 것이기에.....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 수 없이 많은 변수의 관계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경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