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의 허덕임

by 김필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 집단을 이루는 직장에는 다양한 사람들만큼 여러 가지 취미와 특기와 취향들이 존재한다. 서로의 취미를 이야기하고 공유하기도 하고 추천하기도 하는 것 또한 사회생활에 필요한 일이 리라. 올해 초 직장을 옮겨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중 유독 달리기를 예찬하는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는 새로 만나게 된 동료들 사이에서 깔때기로 통했다. 모든 대화와 주제를 막론하고 마무리는 '그래서... 달리기를 해야 한다'였다.

달리기는 체력을 증진시키고 근력과 유연성, 심폐기능을 향상시키고, 인내력과 의지력을 길러주며 생활에 활력을 주고 목표의식을 생기게 함과 동시에 성취감과 자신감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블라블라.... 그녀의 끊임없는 달리기 예찬은 점차 사람들을 지치게도 익숙하게도 만들었다. 지친 동료들은 농담 반, 진단 반으로 이제 안 들린다며 그만하라고 채근을 했고 익숙해진 사람들은 늘 비슷한 레퍼토리에 귀를 닫았다. 하지만 늘 활기 있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직장생활을 해 나가는 그녀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익숙해진 그녀의 동료의 한 사람으로서 달리기는 여러 모로 좋은 것이로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라톤을 취미로 하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는 심심해서 시작한 달리기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먹성 좋은 거구의 몸은 달리기로 탄탄한 근육질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각종 마라톤 대회는 물론 해외 아마추어 마라톤 대회를 섭렵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달리기를 시작한 지 근 10년이 되어가는 베테랑이었고, 직장 동료인 선배 또한 4~5년 차 달리기 마니아였으니 그들의 태도와 생활모습으로 몸소 증명하고 있는 신비로운 달리기의 마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오랜 칩거생활 동안 몸은 노쇠해지고 사지는 둔해졌으며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운동신경이 좋고, 체격 조건이 우수하며 기초체력이 받쳐준다고 자신하고 있었던 오만방자함으로 6월 어느 새벽 나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아하... 때마침 읽던 책의 제목이 하필 '나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시작된다'였기에 겁도 없이 새벽 5시 달리기가 시작되었고, 웅장하고 소란스럽고 장황하게도 러닝화와 트레이닝복 세트의 구매를 위한 온라인 쇼핑에 며칠을 소비하고 직장과 친구들에게 달리기를 해 보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다 나의 오만방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이지만 그때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쏘냐....라고..ㅡ.ㅡ

뱉어 놓은 말도 있고 평소 게으른 성격은 아니기에 대망의 디데이에 야심 차게 새벽을 열며 집 근처 하천 주변 산책 코스로 향했다. 준비성도 철저하게 달리기 초보자들을 위한 앱을 추천받아 앱을 실행시키고 출바알~~~~

이게 뭐야.... 초보자를 위한 앱은 총 8주 코스로 일 주 3회로 이루어져 있었고, 첫 번째 주는 1분 달리기, 2분 걷기, 1분 달리기를 반복하여 워밍업 걷기, 마무리 걷기 등을 포함하여 40여분의 운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분 달리기라니... 누굴 운동 초짜로 아나... 이래 봬도 배드민턴, 배구, 요가, 필라테스 안 해본 운동이 없고, 어디 가서 운동신경 좋다는 말 좀 들었던 사람인데...... 1분이라니.... 몹쓸 앱이네 쯧쯧... 혀 끝을 차면서도 이왕 시작한 거 앱에서 하루하루 달릴 때마다 주는 인증 도장이 받고 싶은 나머지,,, 천천히 쉬어가면서 하지,,, 하는 마음으로 달렸다.

그리고......... 1분은 오지 않았다. 마음속의 1분은 이미 지났고, 몸은 이미 두 동강이 날 것 같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며 숨은 문자 그대로 턱까지 차올라 목구멍에서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어찌나 관용표현이 정확한지 다리는 진심으로 천근, 만근이었고, 흔들흔들 달려있는 팔은 거기 왜 붙어있는지 모르게 따로 놀고 있었다.

시간의 상대성을 몸소 극적으로 체험하며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것마냥 몸뚱이를 질질 끌고 가는데도.... 1분은 오지 않았다. 얼굴이 폭발할 것처럼 달아오르고 온 몸의 물이 마른 것처럼 바삭거렸다. 달리기는 다리가 하는데 왜 팔과 몸뚱이가 아픈 것이며 기도와 성대의 위치가 분명 다른데 숨을 내쉬는 구멍에서 쇳소리가 났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이 분명 피를 토하는 것이리라... 핏덩이가 목구멍으로 올라오기 직적 1분을 알리는 신호가 앱에서 울리고, 드디어 2분 걷기가 시작되었다. 오~ 주님!! 천국을 만난 기분으로 팔을 휘적거리면서 2분을 걷다 보니 하천 주변에서 달리기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새벽을 살아가고 있었다니, 근면과 활력을 옵션으로 가진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

아... 시간의 상대성.... 2분은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 또다시 울리는 앱 신호음으로 이미 내 다리가 아닌, 근육이라고는 일도 없이 흐늘거리는 기다란 두 개의 신체 말단 부위를 오직 두뇌의 힘으로 흐느적흐느적 움직인다. 이것은 달리는 것인가, 빠른 걸음인가, 아니면 누군가, 무엇인가에 질질 끌려가는 것인가 도무지 모를 포즈와 모양새로 그렇게 또 1분이 흐른다. 그리고 또 2분이 흐른다. 그리고 또다시....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 이건 아니다 싶어 휘적거리는 팔과 다리를 멈추려던 순간, 동료들과 친구들 앞에서 떠벌이같이 나불거리던 나의 낯짝이 떠오른다. 하늘을 모르고 치솟던 눈썹과 으쓱이던 어깨를 하고 달리기쯤 나도 한다고 오만을 떨던..... 미숙하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어리석은 며칠 전의 나를.... 그리고... 아니...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어차피 두, 세 번의 1분만 지나가면 오늘의 달리기는 끝이라고 앱에서는 의지를 북돋는다. 머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지만, 어쨌든 네가 곧 성공할 것이니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노스트라다무스랑 뭐라도 되는지 앱에서는 포기할 때쯤 그럭저럭 한 미사여구를 섞어 사탕발림과 교언영색으로 나의 팔다리를 이끈다. 나는 꼭두각시 인형극의 마리오네트 인양 어사무사, 그럭저럭, 얼렁뚱땅 첫 번째 나의 달리기를 완주했다.

기염을 토하 듯 숨을 쏟아냈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두드리는 팔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땀으로 떡이 되어있었고, 나는 땀이 잘 안나는 체질이라며 한약을 한 재 지어먹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몸뚱이는 기능성 운동복이 무색하게 땀을 분출하고 있었다. 뱉었던 말의 무게를 실감하며 어쨌든 첫 번째 나의 달리기는 완료되었다. 그런데.... 1분을 달리지 못하는 몸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달리기를 했던 어렴풋한 기억은 초등학교를 지나 체력장을 하던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체육대회 정도 되었으니 근 20년이 흘러버렸더라..... 이성적으로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체력으로나 체격으로나 운동신경으로나 이미 완성형으로 태어났다고 자부하던 허세와 오만함은 '1분의 허덕임'의 충격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선배와 친구와 또 새벽부터 하천 산책로를 달리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나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딛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1분도 허덕이며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달리는가...... 무엇이 그들의 다리를 움직이는가. 특별한 장비와 장소도 없이 그저 맨 몸으로 자연으로 나가 부딪히는 그들의 세상이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이미 한 걸음 내딛었으니 더디지만, 조금씩 조금씩 가보고 싶었다. 내일도 내 온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1분의 허덕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부지불식간에 1분은 2분이 되고, 3분이 되고,,,, 어느덧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닌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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