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감수성

by 김필필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러 커피 한 잔 사 들고 룰루랄라 서점을 향했다. 눈을 돌려 주변을 둘러봐도 책과 책 읽는 사람들과 책을 전시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평화롭다. 굳이 꼭 필요한 책이 없는데도 마냥 책 살펴보기가 즐겁다. 이것저것 새로 나온 책들이며 생전 보지 않는 자기 계발서까지 훑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문득 저쪽 책 코너에 인도인이 보인다. 안경을 쓰고 체크무늬 남방과 청바지를 입고 가방을 멘 모양새가 학생인 듯도 하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얼굴에 직장인인 듯도 하다.



그러면서 나는 '그래, 인도인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지, 암, 그렇고 말고, 인도인을 봤다고 훑어보는 건 실례야..... 피부색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야. 우리와 전혀 다를 것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다니 난 역시~ 멋져.



요즘 지성인의 덕목이 젠더 감수성, 인권감수성... 이런 거잖아. 남자와 여자, 종교와 인종을 넘어선 범인류애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들 세세한 불편함을 꿰뚫어 보는 감수성이야말로 이 시대의 지성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었고 - 물론 메갈리아며 한남충, 맘충 등의 과도기적 양상이 과격화되는 경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기는 하지만 - 나의 이상형은 따뜻한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며 우리 사회 또한 더 이상 한민족이 아닌 다민족 다인종 국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과거의 국경과 인종, 종교와 성으로 구분 지어졌던 공통분모 없는 수많은 집합들은 현재 서로의 사상과 생각을 공유하는 수많은 교집합을 가진 새로운 집합으로 해체와 합체를 반복하며 심지어 과거의 집합의 의미조차 희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불과 몇십 년 만에 아이들의 크레파스에서 살색이 사라지고 살구색이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으며 TV에서는 동성애자임을 자랑스럽게 커밍아웃한 연예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시청자의 인권감수성을 함께 성장시키며 당당히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에 의해 잠식당한 피부색과 인종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더 이상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사고 형성을 거부하고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 당당하게 색깔과 국경과 인종보다는 개개인의 개성과 내적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춰 가고 있다.



이런 폭풍 같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오길 잠시....


잠깐, 왜? 그런데? 굳이?


평소에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한꺼번에 밀려오는 나의 사고의 흐름이 지금 이 시점에 이렇게 진행되는가에 대한 의문 한 가지....


왜 굳이 인도인을 보고 나서 나의 이런 시각과 사고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걸까. 왜 하필 지금일까 하는 생각을 넘어 나의 인권감수성의 자랑스러움은 인도인을 본 후의 불편함에 대한 변명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가식적인 위선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우리와 피부색이 비슷한 일본인이나 중국인, 또는 미디어의 찬양을 한 몸에 받아온 백인을 만났다면 과연 인권감수성이며 젠더 감수성이며... 이런 마이너들을 위한 배려 깊은 나의 사고에 대해 생각이나 했을까? 과연 그랬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타의에 의해 또는 외부세계와 문화와 대중매체와 미디어에 의해 형성되어 왔던 편협하고 배타적인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내부 깊숙한 곳에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인도인을 보고 드는 범인류애적인 생각이 겨우 나의 비 인류애적이고 반인권적이며 인도인보다 살짝 덜 구운 빵 색깔의 피부를 가졌다는 안도감과 우월의식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리도 돌아본다. 우리 사회는 인권감수성, 젠더 감수성, 범세계시민적 자질을 운운하면서도 그 내면에서는 아직도 우월감과 피해의식과 위선과 가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외국인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에서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유색인종을 몇몇 끼워 넣고는 있지만, 그들에 대한 관심은 잘생기고 멋진 젠틀맨의 나라, 백인의 나라에 훨씬 미치치 못한다. 백인들의 나라에 식당을 열어 우리의 문화와 음식을 소개하고 그들의 칭찬에 감동받고 기뻐하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유색인종의 나라에 우리보다 못 사는 동남아의 어떤 나라에 그런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들은 안다. 피부색과 국경과 인종으로 사람을 나누고 편견을 가지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고 현대사회에서 매장당할만한 매우 불편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또 한 겹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무튼, 우리는 인간이라는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로 태어난 이상 하늘이 부여한 인권을 가지고 있으며 피부색, 종교, 국가, 민족, 장애, 성에 의해 그를 제한받을 수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깨뜨릴 수 없음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아무리 할리우드에 백인 영화가 판을 치고 디올 향수가 여성의 몸매를 어필하여 매출을 올리더라도 근원적인 인간의 자질과 가치는 변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하나의 가치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인간의 사고와 문화적 가치관, 세계의 패러다임에 의해 이미 형성되어 버린 나와 같은 세대의 우리의 인권과 젠더 감수성은 과도기를 겪고 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인권감수성, 젠더 감수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지고 인간으로서 모두가 동등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우뚝 설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우리 아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서점에서 인도인을 만난다면 나처럼 힐끔거리며 인권에 대해 잡다한 생각을 하기보다는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의 다름을 이야기하고 문화를 알아가며 글로벌 친구를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keyword
이전 25화여행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