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 연가(戀歌)ep.18

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 타는 이야기

by 김재석

ep.18 두 가지 사건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외래검사센터

넉 달쯤 지나고, 나도 사우디 병원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무렵이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간호부장에게서 통지가 왔다. 점심시간 때, 컨퍼런스 룸으로 한국직원만 모이게 했다. 술렁이는 병원분위기를 느꼈다. 양복차림의 한국인 두 명이 병원 로비에서 간호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굴이 밝아 보이진 않았다. 나는 채혈한 혈액샘플을 들고 병원 로비를 지나가다 그들과 마주쳤다. 나는 목례만 하고 자리를 피했다. 화상병동 2층의 임상병리센터로 가다 수경 간호사를 만났다.

그녀는 동료 간호사들과 소곤소곤 하다, 나를 보자 손짓했다.

“아, 수진아. 오늘 간호부장님이 호출한 거 알제?”

수경 간호사는 나를 구석진 계단으로 데려갔다.

“지금 대사관 사람들이 와 있어. 2층에 임상병리센터 한국인 직원 두 사람이 강제출국 당하나봐. 지금 감빵에 있대. 모두 쉿!쉿! 하고 있어.”

나도 무디다고는 하지만 낌새 정도는 차렸다. 어제도 임상병리센터에 들렸는데 늘 보아오던 한국인 직원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비번인가 싶어서 혈액샘플만 맡기고 나오려고 했다.

그 때, ‘돌아이’, 한국 남자직원을 복도에서 만났다. 그는 시큰둥하게 나를 대했다.

“똘~아이씨, 안녕”

나는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가 ‘돌아이’라는 별칭을 얻은 건 자업자득한 면이 있다. 그날따라 입방정을 잘 떠는 ‘똘~아이’ 직원이 나를 본체만체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보름 전이었나 보다. 임상병리센터에 근무하는 인도인 임상병리사가 검사시약 주문내역서를 들고 와서는 “헬로, 똘~아이.” 했다. 그것도 한국말로 제대로 발음했다.

나는 순간 당한 일이라 ‘이게 미쳤나!’ 소리도 못했다.

“Sorry. Please tell me again.”

“헬로, 똘~아이. 안~졍하세요.”

인도 청년은 한국말로 인사하는 법을 배웠다며 발음이 괜찮나, 고 되물어왔다. 나는 하도 기가 차서, 누구한테 그따위 인사말을 배웠냐며 따져야하는데 ‘한국말도 다 배우고, 장하다’, 며 엄지척 해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가 엄지척 해줬다고 지나가는 한국인 간호사를 볼 때마다 “헬로, 똘~아이.” 했단다.

‘저게 미쳤나.’ 소리는 한국인 간호사들 입에서 나왔고, 진원지는 인도 청년과 같이 근무하는 한국인 남자직원 최 임상병리사였다. 나는 성도 같고 해서 평소에 안면은 트고 지냈다.

그는 재미삼아 가르쳐줬단다.

“재밌잖아요. 여기서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술도 못해, 담배도 눈치 보며 피워야 해, 돼지고기도 못 먹어. 뭔 재미로 살아요. 한국에서는 병원 마치면 삼겹살에 술 한 잔은 기본이었는데….”

나는 ‘여기는 사우디야, 이슬람 국가에 왔으면 이슬람법을 따라야지’ 하며 속내를 드러내려다 참았다.

“봉급 많이 받잖아요. 그리고 똘~아이, 똘~아이, 하고 다니면 한국인들 체면 깎인다고 생각 안 해요.”

“여기서 뭔 체면 차릴 일이 있어요.”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퉁, 튕기듯 말했다.

“만약 간호부장 앞에서 똘~아이 했다가는….”

그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는 똘~아이, 못하게 주의시키겠다며 낯을 붉혔다.

재미있는 일은 그 다음 편으로 이어졌다. 병원에 근무하는 외국직원들이 최 임상병리사만 보면 “헬로, 똘~아이.”했다. 서로 비위 상하는 일이 있으면 더 그런다나. 아무튼 다른 한국인 직원에게는 일체 그런 말을 안했다. 그의 별명이 ‘돌아이’가 된 사연이다.

점심시간, 컨퍼런스 룸에는 한국대사관 직원과 간호부장이 한국인 직원모임을 주관했다.

“아마 내일쯤 여기 한국 남자 직원 두 사람이 강제출국 당할 거예요. 태형(곤장형)까지는 저희들이 막았는데 근무는 더 어려울 것 같네요. 두 사람도 근무하기를 원치 않고 해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대사관 직원이 경위를 말하려는데 간호부장이 끼어들었다.

“두 직원이 근무를 원하고, 말고가 아니고 여기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 망신시킨 게 더 문제에요. 내가 누누이 경고를 했어요, 안했어요. 숙소에서 돼지고기 구워먹지 말라고!”

이 간호부장이 언성을 높아졌다. 간호부장의 진짜 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명예를 더럽히는 일은 묵과할 수 없다며 버럭버럭 화를 냈다.

여자직원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지만, 남자직원들은 병원에서 마련해 준 빌라형 주택에 산다. 삼시세끼를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사우디 대형 식료품 마트나 한국인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마트를 찾아간다. 한국인 건설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트도 늘어났다. 마트끼리도 경쟁이 되었는지, 아마 한 곳에서 이슬람율법에 금하는 돼지고기를 몰래 들여온 모양이다. 두 직원은 단골이 되었고, 숙소에서 구워먹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단다. 종교경찰이 이웃의 신고를 받고 쭉 지켜보다 엊그제 현장을 덮쳤다. 대사관 직원의 말로는 지금 한국인 마트들은 사우디 종교경찰이 다 뒤지고 있단다. 돼지고기 스프가 든 라면은 다 쓸어 담아갔단다. 당분간 이용을 삼가라고 했다.

‘돌아이’ 최 임상병리사는 대사관 직원이 말하는 내내 머리를 책상에 처박고 있었다. ‘뭐, 삼겹살도 못 먹고 어째, 뭔 재미냐고. 꼭 뒤에서 알 까는 것들이…. 너도 몇 번 얻어먹었겠지. 둘 만 잡혀가서 양심에 찔리는 모양이지.’

나는 엎드려 있는 그의 뒤통수에 꿀밤을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여자직원이라고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여자기숙사는 격주로 금요일은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다. 사우디에선 금요일이 우리가 아는 일요일이다. 목요일은 토요일쯤 된다. 주로 리야드 야채시장이나 대형 마트에 들린다. 여기선 통근버스로 남자기사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바깥출입은 엄두도 못 낸다. 여자는 운전을 못하도록 법으로 금했다. 사우디 여성들은 남편이나 아들, 집안을 관리하는 남자집사가 꼭 동행해서 마트나 시장을 나온다. 마트에서 장을 다 보고 나면, 그녀들은 마트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러면 그녀들을 태우러 차들이 줄지어 마트 입구로 들어오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나는 기숙사 식당을 애용하지만 고참 중에는 자기 방에서 더러 요리를 해 먹었다. 식당 음식도 오래 먹다보면 질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리야드 야채시장에는 신선한 야채와 열대 과일이 많다. 지중해 연안 나라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이 대부분이지만….

한 달 전에 야채시장에 갔었다. 시장에 갈 땐 모두 아바야를 입고 히잡으로 머리를 두른다. 버스 뒤편에서 간호사 두 명이 가방에 넣어온 짧은 치마를 갈아입었다. 색깔도 초록색이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수진 간호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애들 뭐 해? 화장도 좀 진하게 하고.”

“저 고참 애들, 연애하는 것 같은데…. 비, 밀, 연, 애. 흐흣.”

그 고참 간호사들은 야채시장에 내리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버스기사는 장볼 시간을 3시간 주었다. 수진 간호사와 나는 장 볼 목록을 종이에 적어서 나왔다. 야채시장은 넓어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금방 3시간이 가버린다. 나는 겉만 싱싱한 수입과일보다는 말린 과일을 좋아한다. 특히 ‘데이츠’는 기가 막힌 단맛을 가진 대추야자다. 대추야자는 사막에서 피 같은 물 한 방울을 빨아올려 열매에 양분을 차곡차곡 쌓고 쌓는다. 말린 ‘데이츠’에는 그 빨간, 피 같은 결이 뭉쳐있다. 나는 데이츠를 깨물 때마다 말린 과일이 아니라 핏덩이를 먹는 것 같아 소름 돋을 때가 있다.

‘피를 뽑아 먹고사는 직업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다 핏덩이로 보이니….’

그날은 야채시장 깊숙이 들어가 봤다. 목록에 든 물건을 다 구매했고, 야채시장 뒤편 골목은 어떨지 궁금했다. 야채시장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건물로 갔다. 수진 간호사는 주저주저 했다. 아무래도 종교경찰이 뒤에 붙은 것 같다고 그냥 돌아가잖다. 나는 ‘뭐, 죄진 거 있어?’ 하며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전에부터 가 보고 싶었던 카펫시장이다. 나는 기숙사 방바닥에 카펫을 깔고 싶었다. 내 키만 한 카펫을 구하고 싶었다. 미로 같은 실내인데다 예쁜 카펫 가게들이 양옆으로 즐비했다. 내 눈이 딱 띄는 물건이 있었다. 가게 입구 쪽 벽에 걸려 있었다. 아랍어로 모양을 낸 카펫이었다. 코란 구절로 글자모양의 카펫을 짠 모양이다. 아랍어 글씨체는 ‘_’ 밑줄 일자로 쭉쭉 긋다가 코브라 뱀처럼 고개를 치켜든다. 코브라가 연속으로 움직이는 모양을 한 컷, 한 컷 찍어놓은 모양새다. 아랍어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카펫을 수놓았다.

나는 카펫을 버스까지 가져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가게 남자주인은 OK 손사인을 주었다. 외국인 여자를 봐서 기분이 좋은 지, 방금 구워 온 거리며 얇고 넓적한 밀가루 빵을 내밀었다. 야채시장에 나오면 꼭 사먹는 ‘굽스’ 다. 맛은 밋밋한데 바삭바삭 부셔먹는 재미는 있다.

나는 ‘굽스’를 들고 건너편 가게에서 어슬렁거리는 셔츠차림의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이거 드세요. 우리 따라다니는 거 알아요.”

사복차림의 남자들은 내가 좀 당돌해 보였는지 그냥 웃었다.

“우리는 카펫을 보러왔지 비밀연애 하러 온 거 아니에요. 이거 먹고 가세요.”

“땡큐. 고맙지만 우리도 물건 고르는 중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그들은 굽스는 사양한다며 딴 곳으로 가버렸다.

수진 간호사가 옆으로 다가와서 가슴을 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어떻게 종교경찰들 앞에서…. 너! 영어 못한다고 울컥하던 그 애 맞니?”

“내가 죄 지었어. 할 말도 못하게.”

나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마음에선 울분이 솟았다.

‘여자들을 차라리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나는 굽스를 한 입 바싹 깨물었다.

그날, 그 고참 간호사들은 종교경찰에 잡혔다. 미로같은 카펫시장 안에 비밀 데이트 장소가 있었던 모양이다. 짧은 초록색 치마는 증거물로 압수당하고, 간호부장이 병원장과 같이 가서 빼내왔다. 이 간호부장은 차마 낯부끄러워서 쉿!쉿! 했다. 연애하는 상대가 병원 사우디 의사였던 것도 빠르게 일단락 지은 이유였다. 그녀들은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귀국하기로 손도장을 찍었단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고, 이젠 병원장 앞에서 낯 들고 다니질 못하겠어요. 앞으론 종교경찰에 잡혀가서 엉덩이를 맞든, 강제출국을 당하든 봐주지 않겠어요.”

이 간호부장의 매몰찬 한 마디에 컨퍼런스 룸은 찬물을 끼얹진 듯 조용했다. 헤이해진 정신무장을 점검 차 나왔던 대사관 직원들이 더 멋쩍어 했다.

그날부터 기숙사 게시판엔 대사관에서 나눠 준 전단이 붙었다.

‘사우디에서 금하는 것과 여성이 하지 말아야 할 것.’

첫째, ‘할랄’ 음식만 먹고 ‘하람’ 식품은 먹지 말 것.

(대표적인 하람 식품 : 돼지고기, 민물고기… 등등)

둘째, 비 이슬람교도와는 결혼 할 수 없다. 개종하기 전에는.

셋째, 외출할 때는 아바야를 입어야 하고, 남성 후견인을 동반해야 한다.

(남편, 아들, 집사… 등등)

넷째, 공개적인 장소에서 가족 구성원이 아닌 남성과 대화하는 것을 제한한다.

(공공장소에서 연애금지.)

다섯째, 긴급한 여성수술의 경우, 남성 가족이나 친척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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