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몇 개의 철칙이 있다.
마지막 날 하루는 이쁘고 근사한 호텔에서 숙박하고 좀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면서 마무리 잘하는 것,
그리고 계획은 계획일 뿐, 무리하지 말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자"이다.
함께한 Gold Lee 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분의 말을 빌리자면, "여행은 하나씩 남겨 두어야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고" ~~^^
맞는 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항상 변수가 생긴다.
이번에도 그랬다.
첫 번째 변수는 족자카르타이었다.
족자카르타에서 보로두부르 사원을 본 후 점심을 근사하게 먹고 폭포를 탐방하기로 했다.
지금껏 내가 선두에 서고 중간에 항상 웃음을 주는 개그달인님, 그리고 여행 오기 전에 중고 오토바이를 사서 연습하고 오신 Gold Lee님이 후미에 섰다.
폭포 가는 길은 차량이나 오토바이 통행량이 적어 Gold Lee님께 선두를 맡기고 내가 후미를 맡았다.
후미에 서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따라가는데 구글맵이 도로 끝지점에서 급경사 산길로 방향을 알려준다.
지도상 여기서 1km 미터만 가면 폭포로 가는 지름길로 연결된다.
도로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울퉁불퉁 높낮이가 심하고 낙엽이 뒤덮인 급경사였다.
바이크 운전 난이도가 상급으로 초보자에게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걱정이 되어 내가 다시 선두를 맡아 운전 요령을 보여주며 200미터쯤 가고 있는데 갑자기 후미에서 클랙슨이 울렸다.
뒤돌아 보니 개그달인님이 탄 바이크가 넘어져 있었다.
다행히 속도는 시속 10km 미만이었고 안전장비를 착용한 탓에 경미한 타박상을 입었다.
낙엽에 바퀴가 슬립이 되면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단다.
이런 경우 운전자 대부분은 멘붕이 온다.
작년 베트남 북부 하장루프를 타면서, 20년 경력의 할리 운전자가 빗길에 한번 슬립 한 다음, 연속적으로 2번을 더 슬립 하면서 멘털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단체로 멘붕이 왔다.
이구동성으로 바이크를 타지 말고 그냥 끌고 내려가자고 한다.
하지만 급경사길에서 바이크를 끌고 내려가는 것은 더 위험하다.
사람의 힘으로 바이크 무게를 감당할 수 없으며, 핸드 브레이크만으로는 제어가 안된다.
이럴 때는 시동을 켜고 엔진브레이크와 핸드브레이크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중심을 잘 잡고 천천히 내려가야 안전하다.
일단 두 분을 안심시킨 후 걸어서 내려가도록 했다.
내가 개그달인님의 바이크를 운전해서 내려가 주차해 놓고 뛰어서 올라갔다.
다행히 Gold Lee님은 스스로 바이크를 운전해서 내려오고 있었다.
중고 오토바이를 사서 운전 연습을 하고 오신 Gold Lee 님의 준비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모두 무사히 도로까지 내려와 잠시 쉬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휴식을 한 후 폭포 가는 것은 포기하고 바로 호텔로 가기로 했다.
물론 다른 길로 돌아서 갈 수도 있었지만 , 무리하기보다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안전하게 여행하는 비결이다.
사실 바이크 면허를 따고 바로 이곳 발리에서 바이크를 렌트해 여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도로 폭이 좁고, 교통체증이 심한 발리와 족자카르타에서 운전하는 것은
신병훈련 마치고 바로 UDT 특수 훈련에 돌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발리도착 첫째 날,
바이크 렌털샵에서 시동을 걸고 골목길을 왔다 갔다 하며 연습하는 개그달인님을 보고 걱정이 많았었다.
과연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더구나 인도네시아는 차량이 우리와 반대인 좌측통행이다.
그래서 우측통행 시 중앙선에 붙인 후 좌측으로 진입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동행한 두 분 모두 운동 신경이 뛰어나 금방 이곳 도로상황에 적응을 잘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한 것처럼
이곳 도로에서 바이크 운전 시 보이지 않는 룰을 따라야 한다.
안전운전의 첫걸음은 이 룰을 빨리 파악해서 운전하면 된다.
마치 계곡을 따라 물이 흘러가듯 , 바이크 무리 속에 일부분이 되어 따라가면 된다.
주의할 점은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동남아 바이크 운전의 가장 기본적인 룰이다.
갑자기 속도를 높이거나 급 브레이크를 밟기보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거나 줄이면서 내 바이크의 속도를 주변에 알리면서 운전해야 안전하다. 그러면 내가 늦게 가더라도 다들 알아서 추월해 간다.
스쿠터는 자동기어 변속기로 액셀과 브레이크만 조작하면 된다.
그래서 자전거만 탈 수 있다면, 조금만 연습하고도 누구나 탈 수 있다.
스쿠터 운전의 기본자세는 , 엄지 약지 그리고 새끼손가락은 핸들의 그립을 잡고 검지와 중지는 브레이크에 항상 올려놓는 것이다. 그래야 긴급상황에서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브레이크 제동은 항상 양손 모두를 사용해야 제동력이 좋다.
출발할 때는 브레이크를 잡은 상태에서 액셀을 부드럽게 당긴 후 브레이크를 서서히 놓으면서 출발하면 된다.
다음은 액셀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뒤에 사람을 태울 경우 가, 감속 시 액셀을 조금씩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뒤에 탄 사람이 관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운전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는 바이크에서 내리면 절대 안 된다.
만약 급박하게 내려야 할 경우 키를 돌려 시동을 끄거나, 브레이크를 잡고 멈춘 다음 주차할 때 쓰는 사이드 스탠드를 발로 내려 시동을 끄면된다(안전 장치로 사이드 스탠드가 내려져 있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고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는 자동으로 시동이 꺼짐)
만약,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내리면 바이크가 앞으로 나가면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오른손의 손목이 꺾이면서 액셀이 당겨지게 된다. 그러면 엔진 Rpm이 상승하면서 바이크가 앞으로 튕겨 나간다.
이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므로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는 절대로 바이크에서 내리면 안 된다.
2년 전 발리 여행 시 동행인이 좁은 오르막길 주행 중 넘어질 것 같아, 그냥 내렸는데 손목이 꺾이면서 액셀이 당겨졌고 바이크가 날았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바이크만 망가졌다.
바이크 렌털 때 동행한 두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며 주의하도록 했는데, 개그달인분이 운전 중 도로 연석에 걸려 바이크가 비틀거리자 자기도 모르게 그냥 내려 버렸단다.
내리자마자 핸들이 꺾이면서 바이크가 앞으로 가고 몸이 계속 끌려가니, 옆에 가던 인도네시아 사람이 자신의 바이크를 길가에 멈추어 놓고 달려와서 시동을 꺼주어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순간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도와준 인도네시아 행인이 너무 고마웠다.
사고를 간신히 면한 후 그제야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는 절대 내리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두 번의 위기를 잘 넘긴 개그달인님은 그 뒤에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일취월장 바이크 타는 실력이 늘었다.
일부러 간격을 벌렸다 줄였다 하면서 잘 따라오는지 지켜봤는데 Gold Lee 님이 뒤에서 잘 받쳐준 덕에 시간이 지나면서 실력이 급상승했다.
좀블랑동굴 탐험 후 개그달인님이 "바이크를 가지고 동굴까지 내려가야 했는데 아쉽다"라며 개그로 드립을 쳤다.
거기다 "여기서 한국까지 바이크 타고 가려는데 길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순간 빵 터졌다.
발리에서 시작한 바이크 여행은 족자카르타를 둘러보고 마지막 바투르화산을 찍고 모두 끝이 났다.
Tegallalang Rice Terrace에서 우붓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교통체증이 심했다.
거리를 가득 채운 바이크 무리 속에서도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운전할 만큼 실력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을 거슬러 올라가 바이크 렌탈점에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
바이크를 반납한 후 우리 모두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더 이상 바이크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아무도 다치지 않고 바이크 여행을 끝마쳤다는 성취감에서 터져 나온 기쁨의 함성이었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자축하는 모습을 바이크랜탈 직원들이 쳐다본다.
이들은 왜 우리가 이토록 기뻐하는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여행을 했는지 ~~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개그달인님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오토바이 면허를 따고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발리와 족자카르타를 마나님을 태우고 자유여행을 했으니 ~~~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을 해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반응은 "네가 오토바이를 탔다고? 그것도 동남아시아에서?"
모두가 거짓말 마라며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아마도 우리 모두 믿지 못할 무용담을 들려주기 위해 한동안 바쁠듯싶다.
다음을 기약하며 ~
참고로 한국에서는 1종이나 2종 면허를 취득하면 125cc 이하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지만, 이건 한국에서만 적용되며 외국에서 스쿠터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오토바이 면허인 소형 2종 면허 취득 후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