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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an 18. 2022

역사용어 정리 : 정신대, '위안부', 성노예

'양민학살'을 버리고 '민간인학살'로 불러야 하는 이유

-오늘은 민간인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등 관련된 잘못 알고 있는 역사용어를 설명해주시겠다고요?

네. ‘민간인학살’이란,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국군과 경찰이 전란기의 혼란을 틈타 재판절차도 없이 무고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한때는 이걸 ‘양민학살’ 사건이라고 불렀죠. 2000년대,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양민학살’이 아니라 ‘민간인학살’로 불러야 한다고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정리가 됐고요.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민간인희생사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역사용어에서 ‘양민’이라는 말이 사라지게 된 거죠.

하지만 아직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여전히 ‘양민학살’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심지어 언론사 기자들 중에서도 ‘양민’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2000년까지만 해도 일부 단체는 '양민학살'이라는 용어를 썼다.


-‘양민학살’이라는 말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씀인데요. 뭐가 문제인가요?

‘양민’에서 ‘양’자는 착할 양, 어질 양 즉, 선량한 백성이라는 뜻인데요. 6.25전쟁 당시에는 ‘빨갱이가 아닌 착한 백성’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가족을 잃은 유족 입장에서는 ‘억울한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양민학살’이라는 말을 썼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양민’을 강조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착한 백성이 아니면, 법치국가에서 재판도 없이 국민을 죽여도 되느냐’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학살당한 희생자 사이에도 우열과 등급이 매겨지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각 유족회별로 ‘우리가 진짜 양민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양민이 아니라 좌익 성향이 있었던 것 아니냐’ 뭐 이런 거죠.


-그렇네요. 민주주의 체제의 법치국가라면 설령 범죄혐의가 있더라도 반드시 법원의 재판절차를 거쳐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처벌할 수 없는 건데, 단지 의심된다는 이유로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죠. 그래서 독일 나치의 유태인학살이 ‘반인권범죄’로 지탄 받는 것이고요.

그렇습니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 일어난 대부분의 민간인학살 사건은 국군과 경찰이 ‘인민군에 협조했다’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학살을 합리화했는데요. 그걸 ‘양민학살’로 인정받으려면 희생된 사람이 그 혐의가 없음을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죠. 그런데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었고, 그 재판기록도 남아 있는 게 없는데, 무엇으로 그걸 입증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재판절차 없는, 또는 요식적인 재판절차를 거쳤다 하더라도 그 절차 자체가 불법적이었던 모든 학살사건을 ‘민간인학살’로 통일하는 게 옳다는 역사학계의 합의가 이뤄지게 된 거죠.


그렇게 해서 지금은 국군과 경찰의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일어난 ‘산청 함양 거창사건’이나, ‘여순사건’ ‘제주4.3사건’ 진압 중에 일어난 학살, 그리고 ‘보도연맹 학살사건’ ‘형무소재소자 학살사건’, 노근리 사건이나 마산 곡안리 사건처럼 피란민 학살 등을 모두 통칭하여 ‘민간인학살’로 부르고 있는 겁니다.

2000년 이후부터 '민간인학살'이라는 용어가 확립되었다.


물론 아직도 유족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강조하기 위해 ‘양민학살’로 쓰는 경우도 가끔은 있는데요. 그런 경우는 어느 정도 이해하더라도 적어도 역사연구자나 언론사 기자라면 ‘양민학살’이라는 용어는 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용어 중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명칭에 대한 혼란도 있다고요?

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데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신대’라고 불렀습니다. ‘정신(挺身)’이라는 말은 ‘앞장서서 몸을 바친다’는 의미로 일제가 전쟁을 치르면서 각종 군수공장에 식민지 조선의 젊은 여성을 강제동원한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근로정신대’라고도 불렀는데요.

물론 그 속에는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바뀐 경우도 있었고요. 그러다보니 그런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1990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된 우리나라의 여성단체 연대기구의 이름이 처음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였죠.


그러다가 나중에 ‘정신대’라는 말이 일본군 ‘성노예’를 지칭하는 말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정신대’라는 말을 버리고, 2016년 ‘정의기억연대’로 이름을 바꿨죠. 전체명칭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죠. 그리고 피해자들 지칭할 때도 정신대 대신 일본군 뒤에 따옴표를 써서 ‘위안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일본군이 이렇게 불렀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1997년 창립한 경남정신대문제대책을위한시민연대모임도 당시엔 '정신대'라는 용어를 썼다.


-‘위안부’에 따옴표를 굳이 붙이는 이유는 뭔가요?

사실 ‘위안부’라는 말도 객관적이고 정확한 단어는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군인을 ‘위로하고 위안해주는 여자’라는 뜻인데요. 이건 가해자인 일본군의 관점에서 썼던 단어죠. 실제로 당시 일본은 ‘위안부’들을 수용한 장소를 ‘위안소’라고 불렀고요.

그래서 ‘위안부’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쓰지 말아야 할 단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국제적으로는 ‘군대 성노예’, 즉 ‘밀리터리 섹슈얼 슬래이브’라는 단어가 가장 확실하게 이 문제의 본질을 설명해주는 단어라고 공인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노예’라는 용어가 실제 그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는 너무 모욕적이고 치욕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비록 일본군이 가해자 입장에서 불렀던 단어이긴 하지만, 당시 실제로 썼던 ‘위안부’라는 말에다가, ‘이른바 그들이 이렇게 불렀던’이라는 의미에서 따옴표, 즉 인용부호를 써서 일본군 ‘위안부’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국제적인 논문이나 보고서에서는 ‘군대 성노예’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 문제를 지칭할 땐 따옴표 ‘위안부’라고 쓰고 있는 거죠.

1990년 즈음으로 추정되는 한국정대협의 일본대사관 앞 시위. 앞의 두 여성은 윤미향(왼쪽), 서은경(오른쪽)이다.


-네.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일전에 이용수 할머니가 ‘성노예’라는 표현에 화를 내셨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는데, 그것도 그런 배경이었겠군요.

그렇습니다. 당시 이용수 할머니는 한 기자회견에서 ‘내가 왜 성노예냐’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냐’고 항변하셨는데요. 아무래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모욕적이고 치욕적인 표현이니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보고요.

그래서 언론보도나 일상적인 표현에서는 피해자들을 지칭할 때 ‘성노예’라는 표현보다는 따옴표 안에 ‘위안부’ 피해자라고 쓰는 게 당분간은 나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부르는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써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양민학살’ 대신 ‘민간인학살’이라고 써야 하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지칭할 땐 반드시 따옴표를 써서 ‘위안부’라고 표현해야 하겠습니다.

#위안부 #성노예 #민간인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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