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드라마보다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남산의 부장들'을 봤다.
이병헌과 이성민 등 배우의 연기가 뛰어났다. 이성민이 무척 놀라웠다.
엔딩 크레딧을 내내 보았다. 영화관 나서면서도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배우 연기는 물론 감독의 연출, 원작의 힘 등이 좋고 그 모두가 잘 버무려져서 더 그랬을거다.
당시의 주요 상황과 인물을 제대로 녹여냈으니,
온전히 그때의 수레바퀴가 다르게 구르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몰입하게 된 덕분이리라.
79년 10월 26일,
그 날을 둘러싼 옛 기억이 떠올라 메모한다.
찾아보니 95년 9월 28일, 신문사 문화부 기자 시절이었다.
아침일찍 MBC의 드라마 촬영현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제4공화국' 드라마를 찍고 있던 무렵이었고, 이날 아산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장면을 찍는 날이었다.
버스 안 분위기는 침통했다. 연출자는 안 보였고, 조연출이 인솔자였다.
큰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시간 전인 새벽녘 인천대 앞길에서 촬영을 하던 중 음주운전 차량이 제작팀을 덮친 것이다. 카메라기사 한 명이 숨졌고 PD와 분장사 등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1118044200001?input=1195m
'혼란스러운 와중이지만, 촬영을 강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제작팀 관계자는 말했다.
당장 일정상 어려움이 컸을테고, 헬기에다 관중 동원까지... 섭외해둔 규모가 워낙에 큰 촬영이어서 취소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됐다.
마침 어느 블로거께서 정리해주신 해당 에피소드 관련 글이 있어 그날 촬영현장의 기억에 도움이 됐다.
https://cafe.naver.com/sakcafe/9287
10.26 이날 대통령 일행은 사슴농장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고 들었다.
사슴 피를 먹었느니 하는 가십성 얘기를 나눴던 기억도 난다. 박통은 아침에 양치를 하다 칫솔이 부러졌다느니, 그걸 복선으로 드라마에 녹이느니.. 등의 이야기도 슬쩍 떠오른다.
그리고 저녁에는 궁정동 안가에서 술자리를 가졌고, 그 현장은 이미 역사로 세밀하게 기록돼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새삼스러웠고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18년'의 언급들이었다.
박통의 입을 통해 '내가 오래 했잖아, 다음엔 김부장이 해라'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물론 이 말은 권력 사유화로 점철된 세월도 일깨워준다.
2020년이 된 지금 시점에서도 많은 이들은 18년이나 이어졌음을 까먹고 있지 않나 생각 들었다.
결과적으로 87년 대선에 이르기까지,
아니 YS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30여년간이나 되는 세월이구나.
새삼 놀랐다.
영화 자체는 10.26 기점으로 40일간으로 압축해서 다뤘지만,
군부 출신이 정권을 장악한 지난한 현대사가 너무나 생생하게 담겨 있다.
엄혹한 시절, 기자정신으로 힘들게 기록해낸 원작자 덕분에 나온 작품이다.
'남산의 부장들' 원작자 김충식 가천대 부총장, 동아일보 문화부와 사회부 2개 부서에 걸쳐 기자로 일할 때 부장이셨다.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넓은 선배분이었다. 대화를 할 때 생각과 말의 속도가 비슷한, 인물이다. 말이 빨라 가끔 후회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일깨움을 주는 분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 허투루 않는 분이다.
https://shindonga.donga.com/3/home/13/1959159/1
“요즘 언론인들은 (본질적인 정보를) 호미로 캐는 노력보다 ‘집게’로 손쉽게 주운 것을 나열하는 데 급급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 기사만 해도 무의미한 말싸움을 실시간 중계해 정쟁을 부추기고, 시청자와 독자가 고개를 돌리게 하지 않느냐는 거지요. 현상과 사안의 겉모습 뒤에 가려져 있는 본질과 연유에 대해, 좀 더 사명감을 갖고 호미질을 해야 해요.”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읽어보는 인터뷰.
묵직하게 와 닿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