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낙관 지양해야겠지만 미래 대한 막연한 불안도 말아야
하루 10분씩 햇볕 아래에서 산책. 주치의가 각종 약물처방과 함께 준 처방이다. 건강검진에서 기준치 이하를 기록했던 여러 수치 중 하나가 비타민D였기 때문이다.
주치의는 비타민D는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 합성과 역시 부족한 면역체계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며 "비오는 날을 제외하곤 빼먹지 말고 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하루 10분 산책은 고해성사 후 신부님이 보속(가톨릭에서는 지은 죄를 적절한 방법으로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것)으로 당부하신 것이기도 하다.
신부님은 음악을 듣거나 휴대폰을 보지 말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며 산책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쉽다면 쉬운 숙제이지만 '달랑' 10분을 걷자고 집을 나서는 것이 못내 귀찮았다.
그럼에도 두 조력자에게 받은 숙제를 하기 위해 몸을 꾸역꾸역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마침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날이어서인지 아파트 산책로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부터 유모차를 밀고 나온 엄마, 반려견과 함께 나온 보호자, 손을 꼭 붙잡고 나온 노부부까지. 보는 것만으로 빙그레 웃음이 났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니 이들이 눈에 담겼다.
어여쁨을 뽐내는 봄꽃들도 한가득 피어있었다. 진달레와 민들레처럼 이름을 아는 꽃부터 이름모를 꽃들까지 모두가 나름대로 만개한 봄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뻐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같은 진달래라도 누구는 한창 피어있고 누구는 이미 흐트러지게 핀 뒤 고개를 떨구고 있더라. 그런가 하면 누구는 남들이 다 지고 난 뒤에야 꽃몽우리가 터질 준비에 분주했다.
같은 뿌리에서 난 민들레 하나는 활짝 피어서 봄을 만끽하고 있는데, 다른 하나는 진즉 꽃이 피고지어 민들레씨가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은 계절에 피는 꽃도 각기 피는때가 따로 있고 한 뿌리에서 나온 꽃조차 제가 필 시간에 하나씩 피고지는 것이다.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는 화려한 기개를 뽑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중-
어떤이의 아픔에 대해 사회구조적 문제를 일체 거세하고 개별적 문제로 간주하며 그 답을 개인의 인격수양식으로 내려버리는 근거없는 낙관주의는 경계하는 편이다.
아파야 성장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아프지 않고도 성장할수 있고, 그래서 청춘을 꼭 지독한 아픔과 함께 할 필요는 없다. 이런 말들은 팔짱낀 기득권의 결과론적 훈계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는 것 역시 앞으로는 멀리하고 싶은 감정이다. 계절에 따라 피는 꽃이 다름은 물론 같은 꽃도 피고지는 시기가 다른데 사람은 오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