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평화 Jun 09. 2018

"다른사람 말고 내게 집중해보세요"

나에게 집중하는 생경하지만 신선한 경험

칭찬받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른들 기준으로) 말썽피우지 않고 그럭저럭 공부했던 이유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기보단 그때그때 부모님께, 선생님께 듣는 그 칭찬이 좋아서였던것 같다.


내 이야기나 의견을 내세우기 보다 상대의 말을 먼저 들었던건 친구들로부터 또 다른 형태의 인정(a.k.a 칭찬)을 받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고, 상대의 모습과 의중을 살폈던 근원적인 이유였을 것 같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장 폴 사르트르가 2018년 한국에서 케이스연구를 했다면 나만큼 좋은 케이스가 있었을까. 싫어하는 사람에게 조차 곧죽어도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타인지향적인 인간. 30여년을 스스로를 물화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이가 바로 나였다.



늘 주변을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려왔기에 "내 몸에 집중하라"는 요가수련은 생경하면서도 어려운 과정이었다. "머리 속에 상념은 떨쳐버리고 몸에 들고 나는 숨에 집중해보라"는, 수련 시작부터 주어지는 출발선 자체가 쉽지 않았다.


아사나(가부좌) 자세를 잡고 눈을 감으며 숨에 집중해보려고 하지만 이내 머리는 잘 묶였는지, 복부쪽 상의가 말려 올라가지 않았는지가 궁금했다. 하나의 상념을 떨치면 다른 하나의 상념이 그 자리를 채웠다. 온전에 숨에 집중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자세잡기에 들어가면 더 많은 상념들이 머리를 뒤덮었다. '저 회원님은 나보다 한참 나이도 많아 보이시는데 어쩜 저렇게 유연하실까', '나는 언제 저 회원님만큼 다리가 찢어지려나', '내가 회원들 중 제일 뻣뻣하네' 등 온갖 생각들이 요가수련장 곳곳을 둥둥 떠다녔다.


"거울이나 다른사람에 집중하지 말고 내 몸에 집중하세요. 불편하다고 자세를 풀지 마시고 그 불편함 자체에 집중해보세요. 결국 그 불편함을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 그 자세를 하는 것인데 불편하다고 자세를 풀어버리면 불편함을 만든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슬금슬금 불편한 자세를 슬슬 푸는 내 모습이 들킨것 같아 얼굴에 열이 달아올랐다. 요가 선생님이 눈을 감고 말씀하신걸 보면 내 모습을 들킨건 아니었지만. 다시 눈을 감고 내 몸의 불편함에 마음을 집중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내 몸에, 그리고 마음에 집중해 본 것이 언제였을까. 다른 사람의 말과 표정에 숨겨진 마음을 읽으려고 마음을 졸인 적은 있지만 정작 내 마음과 몸의 소리는 들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린시절 감기도 잘 걸리지 않을만큼 건강체질이었던 몸이 급격한 체중감량과 번아웃, 우울증, 각종 면역력수치 급감에 류마티스 진단까지 받을 만큼 망가진건 그동안 몸과 마음의 아우성을 너무나 단호하게 외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매일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꾸고, 아침에 눈을 뜬 뒤엔 '접촉사고가 나서 출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이 병들어 있었지만 내가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마음의 흐느낌을 외면했다.


30년 동안 경험한적 없는 어지럼증이 생겼을때도, 수개월 동안 무릎 통증이 이어질때도 '요새 좀 무리해서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소리를 외면한 대가는 쓰디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라도 내 몸에, 마음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먼저 깨우쳤다면 더 좋았겠지만, 까무러쳐 기절하기 직전에 쓰러져서. 이제라도 다른사람이 아닌 내게 억지로라도 집중할 수 있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