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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웃는 아이 01화

첫 만남

by 꽃님

띵동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긴 생머리에 긴 원피스를 입은 지우 어머니는 도시적인 외모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를 집안으로 들였다. 중문 바로 맞은편 방문에 걸려있는 '공부 중'이란 팻말이 유독 눈에 띠었다. 지우 어머니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햇빛이 잘 들어오는 방은 12살 여자 아이가 혼자서 쓰기에 다소 넓어 보였다. 방 한가운데 책상이 있고 지우는 책상 앞에 앉아서 내게 인사를 했다. 아이의 방이라기보다 사장님실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 위엔 손소독제가 책상 오른쪽 끝 모서리에 놓여 있고 교재와 연필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바른 자세를 하고 앉아서 나를 바라보던 지우가 내가 옆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 손소독 먼저 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아이가 좀 맹랑하단 생각을 했지만 지우의 바람대로 손소독제를 손에 묻혀 여러 번 문질러 꼼꼼하게 손소독을 하고 손을 쫙 펴보였다.


"이제 됐지?"


우린 헬렌켈러에 대한 글을 읽고 토론을 했다.


"선생님 헬렌켈러 곁엔 앤 셜리번 선생님 같이 좋은 분이 계셔서 외롭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 그랬을 거야.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 하는 헬렌켈러에겐 앤 셜리번 선생님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겠지."


"전 절 찾아오시는 선생님이 많지만 항상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우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선생님들이 많은데 왜 외로워?"


"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공부해요. 집에서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지우는 손소독제를 한번 꾹 눌러서 손바닥에 묻히고 손을 여러 번 비비며


"선생님 가시면 바로 바이올린 선생님 오실 걸요?"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교재를 한 장 넘기더니 '헬렌켈러에게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편지형식으로 쓰세요' 질문을 읽고는 연필을 들어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쓰다가 다시 손소독제를 손에 묻혀 야무지게 비벼댔다.


"지우야, 아까 손 소독한 거 같은데, 왜 또 하는 거야? 한 번만 해도 될 거 같은데."


하고 조심히 말을 건넸다.


"선생님, 깨끗하면 좋잖아요. 병균들이 워낙 많아서요. 엄마도 외부인 많이 오니까 꼭 손소독하라고 했고요."


지우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헬렌켈러 아줌마께
헬렌켈러 아줌마 안녕하세요. 전 4학년 지우라고 해요. 아줌마는 앤 셜리번 선생님처럼 무섭지만 마음 따뜻한 분을 만나서 참 운이 좋아요. 아줌마의 고집불통을 고쳐주셨잖아요. 아줌마가 그대로 어른이 됐다면 아마 인생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전 선생님이 참 많아요. 그니깐 아줌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죠? 선생님이 한 명뿐인 아줌마가 정말 부러워요. 왜 세상엔 이렇게 배워야 할 게 많은 걸까요? 힘들어도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꾹 참고 열심히 배워야 된다고 엄마가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 많이 힘들지만 꾹 참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줌마 만나서 반가웠어요.

큰소리로 또박또박 읽는 지우를 보며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우리 지우 어때요?"


지우 어머니는 안경 넘어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떠보이며 물었다.


"네, 지우 참 똑똑하고 이해력이 좋아요. 앞으로 잘 할 거예요."


라고 말했다. 지우 어머니는 더 궁금한 것이 있는지 다음 질문을 하러던 찰나 현관벨이 울렸다.


"어머, 바이올린 선생님 오셨네요. 호호."


하며 문을 열었고 난 지우 어머니한테 목인사만 하고 신발을 신었다. 젊고 앳된 바이올린 선생님은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어머니,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지우는요?"


하며 호들갑을 떨며 방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지우의 무표정한 얼굴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자꾸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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